사헬 지대는 어쩌다 '쿠데타 벨트' 악명 얻었을까 [딥포커스]
니제르 쿠데타로 서방 입지 흔들려…개입하기 쉽지 않을 것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지난 26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국가 니제르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흔히 '쿠데타 벨트'라고 불리는 사헬 지역의 국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는 헌정질서가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니제르 상황에 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미국을 포함해 니제르를 식민 지배했었던 프랑스도 쿠데타를 비난했다.
2021년 온화한 성품의 교사 출신인 모하메드 바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처음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다. 인접국들이 지하디스트 반군의 공격으로 러시아 용병그룹 바그너그룹에 손을 벌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방도 니제르를 주목했다.
마크 로콕 전 유엔 인도주의 업무 담당 사무차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니제르 정부는 꽤 오랫동안 불안정하고 취약한 분쟁의 섬에서 괜찮은 민주 정부였다"고 평가한다.
1950년대부터 전 세계 쿠데타를 추적하는 연구를 해온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의 안보 및 국제 문제 교수 조나단 파월은 USA투데이에 "사헬 지역이 현재 세계의 쿠데타 중심지라고 경험적으로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한다.
켄터키 대학의 클레이튼 타인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486건의 쿠데타가 있었으며, 이 가운데 242건이 성공했다. 대륙별로는 △아프리카(214건) △라틴 아메리카(146건) △동아시아(49건) △중동(46건) △유럽(17건) 순이었다.
◇쿠데타 잦은 이유는…서방 식민지배의 유산·지하디스트에 대한 대처 미흡
말리의 전 외무장관인 카미사 카마라는 USA투데이에 북쪽의 사하라 사막과 남쪽의 열대 사바나 사이에 있는 광활한 사헬 지역에서 최근 몇 년간 쿠데타가 많이 발생한 이유를 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주장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헬 지역의 국가들은 유사한 안보 문제와 문화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묶기는 어렵다. 그나마 공통점은 사헬 지대 대부분 국가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경험했으며 프랑스가 여전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제르의 많은 사람이 안보 문제, 경제난, 부패 등 니제르의 불안정성에 대해 프랑스를 비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테러 전문가이자 보안 컨설팅 업체인 글로벌스트랫을 운영하는 올리비에 기타는 바그너가 수개월 동안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니제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바그너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지적한다.
니제르에서 신군부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시위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정부가 지하디스트의 공격에 미흡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의 보안 및 정보 분석가인 카메드 압둘라예 알구마렛는 바줌 정부가 "목적의식이 없다"며 지하디스트 반군을 단속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쿠데타가 발생한 부르키나파소와도 유사하다. 지난해 1월23일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로슈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을 축출했다. 당시 군부가 내세운 것도 여러 급진 이슬람교 무장 세력으로부터 심각한 치안 위협에 정부가 무능하게 대처했다는 것이었다.
◇'쿠데타 벨트'에서 마지막 남은 서방의 파트너…이후 전망은?
니제르는 재정 및 군사 지원에 대한 대가로 서방 군사 기지를 영토에 유치했다. 또한 니제르는 자국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흐름을 통제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지원을 끌어냈다. 비록 식민 지배라는 어두운 과거로 반(反)프랑스 정서가 팽배함에도 프랑스는 니제르를 사헬 지역의 최후의 파트너로 여기게 됐다.
지난 3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니제르를 방문해 "안보 협력 측면에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서방 지도자들은 정기적으로 니제르 방문을 추진했다. 지난달 조셉 보렐 EU 외교정책 고위대표는 니제르를 방문했을 때도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니제르의 안정성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장 니제르 북쪽 리비아부터 서쪽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까지 국경을 접한 7개국 중 6개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줌의 정치적 기반도 취약하다. 소수 아랍 가문 출신인 바줌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면서 이전 정부에 충성하는 세력과 점점 더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그 한계가 드러난 사건이 바로 이번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바줌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구금됐으며, 대통령 경호실장인 압두라흐마네 치아니 장군은 자신이 쿠데타를 주도한 국가수호위원회의 의장이라고 주장했다.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소속이자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관리였던 카메론 허드슨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니제르는 마지막으로 쓰러질 도미노였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사헬 지역에서 서방의 입지가 매우 불안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믿었던 마지막 보루 니제르마저 쿠데타가 발생하자 서방은 딜레마에 처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사헬 지역 전문가인 이브라힘 야하야는 FT에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일어난 것처럼 제재를 통해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너무 강하게 움직이면 신군부가 결국 러시아로 손을 뻗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접국인 말리에서는 2021년 쿠데타 이후 새 정권이 프랑스군을 추방하고 바그너 용병 그룹과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니제르에서 발생한 쿠데타가 서방이 식민지배의 유산 때문이라고 주장, 자신의 용병조직이 프랑스나 미국보다 니제르의 질서를 회복하고 테러리스트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야하야는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라는 반대편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 국가와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제르에 군사 지원을 해왔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이번 쿠데타로 깊은 정치적 후유증을 안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실제로 10년 전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지하디스트가 말리 북부를 장 하자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이 지역에서 인기가 없었고, 결국 말리에서 지난해 결국 철수해야만 했다.
전 사헬 주재 미국 특사인 피터 팜은 프랑스가 과연 니제르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개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프랑스에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다"고 답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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