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해제 당하느니”, “트라우마에 업무 불가”…교권 침해에 휴직하는 교사들

2023. 7. 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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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직위 해제 피하기 위해 차라리 휴직 선택
“교권 침해로 인한 휴직자 수 많지만 이마저 빙산의 일각”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고인이 된 서이초 담임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검은색 복장으로 참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박지영 기자] #.30대 유치원 교사 A씨는 지난 4월 발생한 교권 침해 사건으로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학부모 민원이 시작된 지 10여일 만에 6㎏이 넘게 빠질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맞은 것을 A씨가 알지 못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며 한 달 가까이 전화, 문자, 학교 방문, 교육청 민원, 아동학대 신고 등 온갖 방법을 사용했으며 나중에는 “아이 치료비를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학부모는 결국 지난 5월 말 신고를 철회했다. A씨는 최근 서울 서이초 사건이 벌어진 뒤 트라우마로 불안 증세가 심해져 약 복용량을 늘렸다.

#. 30대 중학교 교사 B씨는 지난 2021년 9월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직후 3달 동안 질병 휴직을 사용했다. “아동학대로 조사·수사를 받으면 직위해제가 되니 차라리 휴직을 하는게 어떻겠느냐”는 교장의 제안과 불면증, 불안장애 때문이다. B씨는 “상습적으로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 구두로 훈육 지도를 했는데 신고 당했다. 학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를 요구했다”며 “해당 학생은 ‘다른 선생이 또 건드리면 신고하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다니다 결국 자진해서 전학을 갔다”고 말했다. B씨의 사건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아동보호사건으로 전환됐고 결국 지난 4월 가정법원에서 불처분, 즉 무죄 판결이 났다.

“가해 학생 비웃음 떠올라” 눈물의 휴직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

교권 침해로 ‘질병 휴직’을 신청하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교직 생활을 중단하는 사례는 물론 당장 직위 해제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휴직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31일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2년 질병 휴직자수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질병 휴직한 정규교원 수는 9185명에 달한다. 연도별로 살펴보면(4월 1일 기준) ▷2018년 1924명 ▷2019년 2286명 ▷2020년 1858명 ▷2021년 1478명 ▷2022년 1639명이다. 일반 질병 휴직과 공무상 질병 휴직이 모두 포함된 숫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생 오프라인 등교와 교사-학부모 대면 접촉이 크게 줄어든 2021년 다소 주춤했으나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휴직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일반 질병 휴직과 공무상 질병 휴직이다. 교육공무원의 경우 일반 질병 휴직은 최대 1년, 공무상 질병 휴직은 최대 5년까지 사용 가능하다. 일반 질병 휴직은 봉급 70%를 지급하며 해당 기간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공무상 질병 휴직은 봉급 전액을 지급하며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교육공무원은 일반공무원 대비 휴직, 장기 병가가 쉽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질병휴직 대신 간단히 휴가를 내거나 참는 교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교권 침해로 인한 휴직자 수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교원들은 교권 침해 이후 불면증, 가해 학생의 얼굴과 비웃음 등이 떠올라 교단에 서기 어렵고 살고 싶지 않다는 호소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권보호위원회가 3000건 열렸는데 심리 상담, 법률 상담은 이보다 7~8배가 많다. 교사들의 우울증과 마음의 병을 어떻게 치유할 지에 대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권 침해 당해도 ‘공무상 휴직’ 인정 어려워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한국교총 회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 조화를 세워둔 모습 [연합]

교권 침해로 인한 휴직의 경우 ‘공무상 질병 휴직’으로 볼 수 있지만 승인받기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로 일했던 30대 교사 C씨는 2021년부터 1년 동안 학부모에게 교권 침해를 당했지만 결국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공무상 질병 휴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B씨는 “학부모는 가르치는 동요, 일기 쓰기 등 제가 하는 교육 활동 대부분에 간섭했다. 1년 내내 침해 활동이 이어졌고 결국 1년 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려 교권침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며 “교보위 이후 마음이 지쳐 휴직을 냈다. 의사가 2쪽에 달하는 PTSD 진단서와 교보위 결과를 첨부했지만 (공무상 질병 휴직을 판단하는) 공무원연금기금은 계속해서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상 질병과 상관 없이 10년 간의 의료 기록을 요구하는 등 불합리한 지적이 이어졌다. 재청구에도 공무상 질병 휴직을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PTSD가 아닌 ‘적응 장애’로 병명을 바꿔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황수진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부대변인은 “단순 우울증은 물론 공황장애로 번지면서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며 “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있지만 민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가, 휴직을 쓰기도 한다. 결국 질병 휴직과 병가가 도피처가 된다”고 지적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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