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자에 앉은 도구들…현실 전복 미술
저울·주전자·선풍기 등이
"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설치작 눈길 끌어
'철망 통닭' '임신한 망치' 등
회화·영상 등 70여 점 전시
"미술은 뭐든지 상상 가능"
미술은 전복이자 농담이다. 세계적 미술관에서 앞다퉈 소장하고 국내 젊은 작가들이 우상으로 꼽는 김범(60)이 만들어낸 미술관은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입구에는 치타를 쫓는 영양이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된다. 약자가 강자를 사냥하는 '전복'을 표현한 미디어아트 '볼거리'(2010)다. 미술 세계는 이처럼 '무엇이든 가능한' 상상의 세계다.
인터뷰나 전시가 드물었던 '은둔 작가' 김범의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작품 세계를 포괄하는 최대 규모 전시 '바위가 되는 법'이 7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열린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70여 점을 선보이는 13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9월 프리즈 위크를 앞두고 '국가대표 사립미술관'이 강서경과 함께 세계에 선보이는 한국 작가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김범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작가"라며 "미술이라는 허구 세계를 어떤 형식으로 가져올지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적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 전반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농담'이다. '철망 통닭 #1'(1993)에서 건네는 질문부터 풀어보자. 닭을 튀기는 철망이 찢어진 캔버스 중앙에 펼쳐져 있다. 찢어진 모양이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머리에 떠오르는 그 먹음직스러운 친구가 정답이다. 캔버스 자체가 이미지가 되는 세계를 구현한 것. '벽돌 벽 #1'은 캔버스를 실로 꿰매 벽돌이 쌓인 담장처럼 보인다.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나온 흔적을 구현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은 이번 전시의 사진 명소가 될 것 같다. 눈속임을 사용했지만 트롱프뢰유가 아니다. 지시문을 활용한 상상의 회화도 그의 전매특허다. '자화상'에는 사람은 간데없이 구멍과 주머니만 보인다.
'풍경 #1'에는 그림 대신 파란 하늘과 나무, 강을 바라보라는 손글씨만 적혀 있다. 상상으로 감상하는 그림인 셈이다. 캔버스에 미로 퍼즐을 그린 '무제(친숙한 고통)' 연작은 미로를 풀고 싶게끔 만든다. 주어진 문제와 바라보는 사람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인지적 회화 연작도 관람객과 수수께끼 풀이를 이어간다. '서 있는 여성' 연작, '누드' '현관 열쇠'는 인물과 물체를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그림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비튼다.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 등 말장난 같은 작품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보는 실체를 의심하라.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교육의 재해석'이다. 생명이 없는 사물을 마치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물활론(物活論)은 김범의 중요한 세계관이다. 생산성을 상징하는 망치라는 공구가 배가 부른 모양으로 재해석된 '임신한 망치'(1995)는 허를 찌르는 해학을 보여준다.
김범의 대표 연작 '교육된 사물들'(2010)은 2013년 아트선재센터에 전시된 이후 다시 관객을 만난다. 미니어처 의자에 앉은 로프, 주전자, 저울이 수업을 듣는 교실을 구현한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2010) 앞에선 측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칠판에서 강의하고 있는 영상 속 얼굴의 절반만 비치는 인물이 바로 김범이다. 돌에 정지용 시를 낭송해주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모형 배에 지구가 육지로만 돼 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등은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전시장 한 곳의 비명에도 놀라면 안 된다. 힘껏 소리를 지르며 힘차게 노란 물감의 붓질을 이어가는 배우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완성작은 실제로 전시한 '노란 비명 그리기'다.
관람료는 1만2000원.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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