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 100명 온다는데…믿고 맡길 수 있을까, 가사도우미 찬반
올 연말부터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 100여명이 서울에 온다. 이들이 반년 이상 머물며 시범적으로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가사·육아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정부 계획을 두고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31일 로얄호텔서울에서 외국인 가사·육아 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연말부터 서울에서 필리핀 등 외국인 근로자 100여명이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족, 임산부 등의 집에서 최소 6개월 일하게 된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제도 도입 배경
육아 부담은 계속 증가하는데, 한국인 가사 도우미 종사자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육아 근로자 도입 배경엔 이 같은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인 가사·육아도우미 취업자는 2019년 15만6천명에서 작년 11만4천명으로 26.9% 감소했다. 남은 종사자 가운데 92.3%가 50대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감소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경력 단절과 저출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 인식이다. 이날 공청회 발제를 맡은 이상임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부모가 육아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사정이 있을 때 대체해줄 인력이 필요하다"라며 "이때 많은 선택권을 제공해 상황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가사·육아 서비스 자격은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 도입한 제도로 농업·제조업·건설업·일부 서비스업 등에 한정해 E-9 비자를 발급하고 있는데, '일부 서비스업'에 가사·육아 서비스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다만 가사·육아에 대한 경력과 지식이 있고, 한국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 정신질환자, 마약류 중독자,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은 선발되지 않는다.
노동부는 이번 시범사업 성과를 분석해 우리 사회에 가장 적합한 제도 운영 방안을 찾을 계획인데, 향후 외국인 가사·육아 인력 도입 규모를 몇 명까지 늘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노동부는 내달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잠재 수요자를 대상으로 외국인 가사·육아 서비스 수요량, 선호하는 서비스 제공 형태와 출신 국가, 자격 요건, 지불의사 가격 등을 먼저 조사할 계획이다.
◇제도 도입 순탄할까
공청회 참가자 사이에서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이 나왔다. 가사서비스 매칭 플랫폼업체인 홈스토리생활의 이봉재 부대표는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 종사자는 점점 줄고 종사자 평균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부대표는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50여명이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를 고용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외국인력) 추가 도입이 안 되면 서비스를 누가 어떻게 공급할까의 문제에 부딪힌다"라며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 도입 가부보다는 도입 방법을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를 들여오기보다는 한국인 종사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누가, 얼마나, 왜 외국인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 외국인력 도입이 가사·육아 서비스 전문성 확보나 직업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느냐"라고 물었다.
우려 목소리도 컸다. 가사·육아 서비스 실수요자인 워킹맘과 워킹대디 사이에서도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를 신뢰할 수 있을지, 가사·육아 서비스 질이 떨어지지 않을지, 한국 중년여성 일자리가 줄어들진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다.
복직을 앞둔 워킹맘 강초미씨는 "5060대 육아도우미를 선호하는 이유는 2030대 부부가 가지지 못한 육아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이론만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7살, 5살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대디 김진환씨도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지, 문화적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지, 육아 가치관에 대한 교육을 이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라며 외국인 가사·육아도우미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지 우려했다.
세 살배기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고은씨는 "(외국인 가사·육아 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한국 중년여성 일자리를 뺏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라며 "돌봄시장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저하하지 않을까도 우려된다"라고 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등이 '노예제 도입 중단', '돌봄을 시장의 논리로 계산하지 말라!' 등 손팻말을 들고 외국인 가사·육아 노동자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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