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가방에 녹음기 숨긴 주호민…‘몰래 녹음’ 처벌 가능성은?
녹음 파일 증거능력 인정, 별개 문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가능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발달장애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특수교사를 신고한 가운데, 주씨가 아들과 교사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을 두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조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씨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위반했다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주씨 행동에 ‘공익성’이 있다면 죄가 안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 법조계에서는 주씨가 통비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씨는 최근 자폐 성향을 가진 자신의 아들을 담당한 초등학교 특수교사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주씨 부부는 작동 중인 녹음기를 아들의 가방에 넣어 등교시켰으며, 녹음된 교사의 발언을 증거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학생 앞에서 바지 내려 분리 조치…신고 당한 교사, 1심 재판중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씨의 아들이 통합학급 수업 도중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해당 여학생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두려움을 호소하자 주씨의 아들은 학급에서 분리 조치를 당했다.
이후 A씨는 주씨 부부에게 피해 여학생 학부모에게 사과하는 취지의 통화를 권유했으나 부부는 거절했고, 분리 조치 역시 일방적으로 거부했다고 한다. “9월 19일부터는 통 학급에서 수업하겠다”, “학교에 보내더라도 특수 학급에 온종일 있는 것은 싫으니 조퇴하겠다”는 등의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주씨는 9월 13일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켠 채로 넣어 학교로 보냈다. 이날 A씨는 받아쓰기를 지도하던 중 ‘고약하다’라는 단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주씨의 아들에게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것은 고약한 일이야. 그래서 네가 지금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달 19일 주씨 부부는 담임 교사와 학교장에게 아동학대 정황이 있다고 항의했으며, 이틀 뒤 A씨는 경찰로부터 “CCTV를 확인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현재 A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재판받고 있다. 20여년 동안 특수교사로 일해온 그는 이 사건 이후 불면, 불안 등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와 교사 등 약 80명은 A씨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주호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했나…법조계 시각 엇갈려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주씨의 행위는 합법일까. 주씨의 통비법 위반 여부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통비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주씨 역시 아들과 교사의 대화를 제3자의 입장에서 녹음한 만큼 이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 사건의 경우 공익성과 불가피성을 인정 받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앞서 법원은 2020년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발언을 몰래 녹음했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학대 행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어 부모가 이를 확인해 방지하기 위해 녹음한 것은 녹음자(부모)와 대화자를 동일시 할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시했다. 2017년 대법원도 “효과적인 형사소추 관점에서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적인 가치와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을 비교 형량해 그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몰래 녹음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허용할 수도 있다는 취지다.
반면 주씨가 통비법 위반 혐의로 형사 처벌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주씨가 몰래 녹음을 하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이근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주씨는 아이가 등교를 거부해서 녹음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학대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어야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 재판부는 ‘몰래 녹음’의 통비법 위반 여부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일례로 2017년 9월 아이 돌보미로 일하던 C씨는 생후 10개월 아이에게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X 아니가 진짜”라는 등 큰소리로 욕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 재판부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부모가 증거로 제출한 녹음 파일은 위법하게 수집됐으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심에서는 몰래 녹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C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상반된 해석이 나온 것이다.
◇‘몰래 녹음’ 합법이어도 재판서 증거 능력 보장 못해
설령 주씨의 몰래 녹음 행위가 합법이라 하더라도, 증거 능력을 인정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통비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면서 이런 방법으로 습득된 증거는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녹음본의 증거 능력은 따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의 단서 또는 기소를 하는 과정에서 해당 녹음을 내부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통비법은 몰래 한 녹음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지는 미지수”라며 “아동학대 사건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고할 만한 판례가 2017년에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대화에 속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행위가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또는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난 것이라면, 단지 형사소추에 필요한 증거라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형사소송에서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다른 문제…’사회상규’ 쟁점
법조계에서는 주씨가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주씨의 녹음으로 인해 A씨의 인격권이 침해됐다면 손해배상 여지가 있다. 이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에 의거한다.
앞서 수원지법(2013년), 서울중앙지법(2016년), 대구지법(2022년)은 “피녹음자의 동의 없이 상대방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이를 재생해 녹취서를 작성하는 것은 피녹음자의 승낙이 추정되거나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음성권(자신의 음성이 허가 없이 녹취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은 물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통비법상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녹음했다는 사유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법원은 ▲비밀녹음으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그 중대성 ▲비밀녹음의 필요성과 효과성 ▲비밀녹음의 보충성과 긴급성 ▲녹음 방법의 상당성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만약 교사 A씨가 주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법원은 주씨가 몰래 녹음을 하게 된 경위, 녹음 내용이 사생활 보호와 비밀을 침해하는지 여부, 그 침해를 초과하는 공익적 목적이나 이익의 크기를 비교해 음성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