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응급 환자 받아도, 받지 않아도 시위·수사…탈(脫) 응급의학과 우려

박정렬 기자 2023. 7. 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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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응급의학과가 설 자리는 여전히 좁기만 하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중증 응급환자 지표를 반영할 방침이지만 이 역시 실무자인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 배후 진료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 응급의학과'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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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1) 정진욱 기자 = 1일 인천에 거주하는 40대 A씨 부부와 A씨 부부를 인천국제공항에 마중나간 30대 지인 등 3명이 오미크론에 감염된 가운데,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인천의 한 병원에서 치료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오전 오미크론 확진자가 치료중인 인천의 한 병원 응급실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2021.12.2/뉴스1


#지난해 9월 한 10대 환자가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이 의심돼 해운대백병원에 이송됐다. 응급실 당직의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CT 등 필요한 검사를 시행했고, 이 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판단에 인근 부산대병원으로 환자를 전원시켰지만 끝내 환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재 환자의 아버지는 병원 앞에서 "의사가 쓸데없는 검사로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했다"며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여학생이 건물에서 추락했다. 119 구급대가 환자를 가장 먼저 옮긴 곳은 대구파티마병원. 당시 환자는 혈압과 맥박수 등 생체징후가 안정적이고 의식상태가 명료했다. 응급실에서 근무 중이던 3년 차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환자 부모와 대화 후 그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점을 확인해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타 병원으로 전원을 권했다. 하지만 환자는 2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떠돌다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해 구급차 내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응급실 전공의는 응급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응급의학과가 설 자리는 여전히 좁기만 하다. 중증 응급 환자를 받아도, 받지 않아도 시위·수사에 휘말리는 일이 생기면서 의료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탈(脫) 응급의학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는 상황이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의 중증 응급환자 수용 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의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응급의료기관에서 심정지 등 중환자의 수용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이어 지난주에는 소방청, 지방자치단체, 중앙응급의료센터,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의사협회 등 관계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정당한 과정을 통해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한 의료기관에 대해 사고 발생 시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내부적으로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응급의학과가 환자 수용을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2차 치료 즉 '배후 진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력·장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응급의학과가 환자를 수용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응급의학과 의사는 "정부의 대책은 결국 환자가 길에서 죽느냐, 병원에서 죽느냐의 차이만을 만들 뿐"이라며 "문제는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책임이 온전히 의사에게 지워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1인 시위가 진행 중인 해운대백병원도 당시 뇌출혈을 치료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었다.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아산병원에서도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치료할 의사가 없어 사망했을 만큼 신경외과 의사 부족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수도권보다 부산시와 같은 지방은 인력난이 더 심각하다. 해운대백병원 관계자는 "의식이 없는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가능한 최대한의 치료를 시행하기 위해 CT를 찍었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 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5.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둘째, 미비한 보상이다. 응급의학과는 병원 내에서도 '계륵' 같은 존재다. 운영 비용 대비 수익이 적어 내부적으로도 입지가 좁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시위·수사 등 책임만 따르고 보상은 미비하니 애초에 문제가 될 수 있는 환자는 받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중증 응급환자 지표를 반영할 방침이지만 이 역시 실무자인 응급의학과 전공의와 전문의, 배후 진료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 응급의학과'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 부담을 높여 대형병원에 환자 쏠림을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환자는 설령 경증이라도 중증이란 생각에 병원을 찾는 것인데 의사가 중증도를 판단해 돈을 더 내라고 하면 갈등만 커지고 정작 필요한 환자도 응급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서 "119 이송 전 환자 상담과 병원 간 전원 등을 책임질 과거의 1339 같은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응급의료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중증 응급수술이나 시술을 할 경우 보상을 2~3배 확대할 것"이라며 "내년도 예산까지 기다리지 않고 재정당국과 협의해 응급의료기금 개편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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