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곤다” 직장내 시비 끝 칼부림···산재 승인 미적에 유가족 ‘울분’
아내는 일터로, 중학생 첫째가 두 동생 돌봐
근로복지공단 “사망과 업무 연관성 파악 중”
광주광역시 광산구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정상훈씨(46)는 지난 1월 13일 새벽 3시 42분쯤 20대 직장동료 A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머리와 목, 가슴 부위를 크게 다친 정씨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세 아이의 아빠인 그가 사망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보상보험(산재) 승인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광산구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월 정씨 유가족이 신청한 산재 처리를 현재까지 검토 중이다. 업무상 사고의 경우 빠르면 3주~4주 내 처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산재법에는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게 보상해 당사자와 그 가족(유족)의 생활 안정을 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3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씨의 죽음과 업무 연관성 등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측도 ‘정씨의 사망이 업무상 사고에 해당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직장에서 근무시간 중 발생한 사건인 만큼 산재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김수지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사무차장은 “직장 내에서 일어난 일인 데다 직장 상사에 보고가 됐음에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만큼 산재로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 보상법 제37조에는 노동자가 업무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고 돼 있다. 여기엔 관리자의 지배 관리하에 발생한 사고나 시설물 등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사고도 포함한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A씨의 판결문을 보면 정씨와 A씨의 갈등은 범행 직전 회사 관리자에게 보고됐다. 당시 A씨는 휴게실에서 정씨에게 “왜 코를 심하게 골아 휴식을 방해하느냐”고 쏘아붙였고 이로 인해 시비가 붙었다. 이 문제는 회사 관리자에게 바로 보고됐으며 정씨와 A씨는 각각 다른 관리 직원과 면담했다. A씨는 면담 직후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물류창고에 보관돼 있던 판매용 칼이었다. A씨는 면담 직후 업무 중이던 정씨에게 흉기를 휘둘렀으나 그를 제재하거나 정씨를 보호할 만한 안전장치는 없었다.
정씨 피해와 유사한 사례를 산재로 인정한 판례도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2월 한 공사현장 관리자가 해임된 일용직 노동자에게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같은해 4월 대법원은 야식비 문제로 다투다 동료를 살해한 사건을 ‘직장 내 인과관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선고했다.
정씨 역시 A씨와 업무 외 사적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씨의 아내와 직장 동료들은 “둘이 평소 대화를 하지 않아 (코골이 외에) 감정이 쌓일 만한 일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산재 처리가 길어지면서 유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씨의 아내 B씨는 “빛 한 점 없는 어둠에 혼자 버려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였던 B씨는 남편이 사망한 이후 7세, 10세, 14세 등 세 자녀를 홀로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B씨는 중학생인 첫째에게 어린 동생들을 맡겨놓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B씨의 바람은 남편의 사망이 하루빨리 산재로 인정받고 남편을 살해한 A씨가 엄벌을 받는 것이다.
한편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1심은 A씨가 5000만원을 공탁한 점과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성격장애 등을 참작해 지난 14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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