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앱 켜서 목에 걸고 다니는 학생, 아이 낳지 말라는 학부모…울산서 나온 교권침해 사례보니

이보람 2023. 7. 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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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모 초등학교 2학년 담임 A씨는 학부모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자신의 아이가 대변을 하고 뒷처리를 못하니 닦아달라는 것이다. 초교 4학년 담임 B씨는 학생의 토사물을 치워줬다가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문틈에 끼인 토사물까지 교사가 치우다 아이에게 조금 돕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 해당 학부모는 “학생이 도와서 치워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느냐”며 고함을 쳤다. B씨는 “무더위에 토사물 치워주고 ‘앞으론 혼자 다 치우겠다.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며 “해당 학부모는 이후 교장에게 다시 민원을 제기했고, 학부모 간담회 자리에서도 수 차례 언급하며 비웃고 공격적인 말을 했다”고 전했다.

다른 초교 2학년 담임은 요즘 학생들이 몸에 착용한 휴대폰이나 스마트워치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목에 휴대폰을 걸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는데, 폐쇄회로(CC)TV 앱을 켜놓고 찍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이후부터다. 그는 “온종일 모든 장면을 찍고 있다는 것도 소름끼치지만, 트집을 잡힐까 두렵다. 녹음기를 갖고 다닌 학생의 부모가 잦은 민원을 제기해 힘들어 한 동료교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틀간 202건 사례 접수, 학부모 악성·부당민원 가장 많아

울산지역 교사들이 전한 교권침해 사례 중 일부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울산교사노조가 교권침해 사례를 수집했더니 202건이 접수됐다.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집한 결과다. 

교권침해 사례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나 부당한 민원’(40%)이 가장 많았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무시·반항’(33%), ‘학생의 폭언, 폭행’(17%), ‘학부모의 폭언, 폭행’(10%)이 뒤를 이었다. 노조는 교권침해 사례도 함께 공개했다.

사례 중엔 교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심각한 내용도 있었다. 울산 모 초교 4학년 담임인 교사 B씨는 2학기를 휴직해야 했다. ‘공무상 병가’가 이유다. 그는 야단을 쳤다는 이유로, 수업시간 중 학생에게 폭행 당해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는 “교권보호위원회에 분리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결과는 가장 낮은 교내봉사였다. 실질적인 교권보호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체험버스 안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을 붙잡았다가 가래침을 얼굴에 맞은 교사도 있었다. 

모 초교 2학년 담임은 “임신했는데 왜 담임을 맡았느냐”는 말을 들었다. 출산 전날 진통으로 힘들어 학부모의 전화를 못받자 ‘무책임하게 선생님 아기만 낳으러 가는 거냐’는 문자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그는 “출산으로 무책임한 죄인처럼 취급당한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모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의 담임이 바뀌는 게 싫다는 학부모에게 “아이 안 낳으실거죠?”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신혼여행 중에 “귀국하라”는 말을 들은 교사도 이번 조사에서 나왔다.
울산지역 교육과정별 교권침해 사례 현황. 울산교사노조 제공
◆성희롱 피해·콜포비아 호소 교사도 여럿

성희롱은 다반사였다. 모 중학교의 한 여교사는 수업 중 전자칠판에 문장을 쓰고 빈칸에 들어갈 단어의 답을 물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나와 그림을 그렸고, 다른 남학생들이 야륵하게 킥킥댔다. 여성의 성기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해당 교사는 “수업 중 성희롱을 당해도 강하게 처분을 내리거나 고소할 수 없는 슬프고 웃긴 현실이다”고 했다. 원어민 교사 앞에서 “원어민 선생님 엉덩이가 이만하다”며 풍선 두 개를 마주 붙이면서 낄낄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 교사는 전했다.

‘콜포비아(전화공포증)’를 호소하는 교사들도 여럿 있었다.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사는 사소한 문의사항과 민원 때문에 출근 전이나 수업시간, 퇴근 후를 가리지 않고 수 차례 연락하는 한 학부모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됐다. 그는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부재중 전화가 7통이나 와있었던 적도 있다. 휴대폰이 울리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한 교사는 아동학대를 신고했다가 해당 학부모로부터 밤낮으로 전화를 받아야 했고,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 밤 9시30분 한 학부모가 이혼한다고 울면서 전화를 걸어오거나, 자신의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맞고오자 교사에게 폭언하곤 “속이 시원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선생님께 쏟아내야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박광식 울산교사노조 위원장은 “교사들은 각종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 아동학대 위협을 맨몸으로 감당하며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며 “학교에 통합민원 창구는 교육과 관련되지 않은 민원을 처리하도록 하고,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도록 하는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권침해 영향인지 정년을 다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하는 교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31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2월 말과 8월 말 명예퇴직 신청을 한 교사는 모두 208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107명, 10년 전인 2013년엔 107명의 교사가 명예퇴직했다. 명예 퇴직 신청 교사 가운데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가 106명으로 가장 많았다. 초등학교가 70명, 사립 중·고등학교가 31명, 유치원이 1명으로 뒤를 이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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