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기상관측장비 두고 ‘복붙’ 재난문자만 보낸 경북…관측장비 활용한 재난대피시스템 구축한다
경북도가 자동기상관측장비(AWS)를 활용해 마을별 대피체계를 구축하는 등 재난안전문자 전반을 손보기로 했다. 국지성 호우가 극단적으로 발달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해 지역별 기후데이터를 활용한 재난대피시스템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경북도는 최근 민간단체·행정기관·대학·연구기관의 산림·안전 전문가와 ‘산사태·수해 대비 및 대피체계’ 마련을 논의한 결과 음성서비스 기능이 있는 재난문자를 읍·면·동 단위로 자체 발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기존에 시·군이 보내는 재난문자는 ‘호우주의보 발효 중’ ‘위험하니 대피하라’ 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마을별 대피 장소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재난문자와 음성문자를 보낸다는 계획이다.
음성문자는 행정복지센터나 마을회관 등에서 대피방송과 함께 특정 주민 휴대전화로 보내는 녹음된 문자다. 재난문자를 작성하면 음성으로 바뀌어 주민들에게 재난 상황을 알린다. 문해력이 부족하거나 시력이 나빠 작은 글씨를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고려한 조치다.
AWS·강우량계를 활용한 재난대피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재난문자에 지역별 누적강수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비가 내린 지역의 경우 행정복지센터 자체 판단으로 대피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산사태는 산의 흙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상태에서 비가 내릴 때 일어나는데, 최근 국지성 호우가 발달한 만큼 지역별 누적강수량을 파악해 선제적 대피명령을 내리겠다는 취지다.
경북도 관계자는 “어르신들의 경우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재난 상황을 전달받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 활용도 어렵다 보니) 읍면동 단위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받기 어려워 자신의 지역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AWS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상청 예보 및 호우특보 방송만으론 마을별 집중호우 가능성을 즉각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폭우로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경북 예천군의 면적(661.5㎢)은 서울(605.25㎢)보다 넓다. 당시 예천읍에서는 102㎜ 비가 내렸지만, 지보면의 강수량은 절반 수준인 59㎜에 그쳤다. 농어촌의 경우 지역별 상황에 맞는 정확한 기상정보 제공이 중요한 이유다.
정교철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심화하는 기후재난에 대비하려면 지역별 기후 자료를 수집·활용하고 기후위기 민감도를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며 “위기상황이 예상되면 강제 대피명령을 통해서라도 인명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AWS·강우량계는 1~10분 간격으로 설치된 지역의 강수량을 측정한다. 원하는 시간대 해당 지역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최대 강수량은 얼마인지 클릭 한 번으로 알 수 있다. 성능에 따라 풍속과 풍향까지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1000억원(추정)을 들여 전국 4323곳에 설치됐지만 이번 폭우에 대부분 지자체는 ‘복사 후 붙이기’ 방식의 스팸성 재난문자만 주민에게 발송했다.
일각에서는 재난·재해 상황 시 하루에도 수십건씩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재난문자에 중요정보는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지자체의 재난문자가 일종의 ‘면피성’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실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재난문자 알림 끄기’ 검색어도 폭증하는 상황이다.
정영훈 경북대 건설방재공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현상은 올해도 내년에도 당장 나타날 것”이라며 “사방댐 건설 등 산사태 방지 시설이 하루아침에 모든 지역에 설치될 수 없는 만큼 마을 단위별로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될 때는 반강제적으로라도 대피시키는 현실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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