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의 기적처럼···독일전 승리는 무조건 필요하다[여자월드컵]
상황이 참 묘해졌다. 마치 5년 전 러시아 카잔에서 일어났던 한국 축구사 최대의 업적 중 하나인 ‘카잔의 기적’과 비슷한 상황이다. 경우의 수에 따라 기적같은 16강 진출을 노릴 수 있지만, 조건은 그 때보다 더욱 가혹하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 30일 모로코와의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0-1로 패해 최하위(2패·승점 0점·골득실 -3)로 떨어졌다.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였던 모로코에 패하면서 한국은 조별리그 탈락이 유력해졌다. 다만, 탈락 확정은 아니다. 콜롬비아가 독일과 2차전서 극적인 2-1 승리를 챙긴 덕분이다. 현재 H조 1위는 2승인 콜롬비아(승점 6점·골득실+3)이고 독일이 1승1패(승점 4점·골득실+5)로 2위다. 모로코가 독일과 승점이 같으나 골득실에서 -5로 밀려 3위다.
H조 최종전 2경기는 8월3일 오후 7시에 열린다. 한국은 독일과, 콜롬비아는 모로코와 최종전을 치른다. 만약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콜롬비아가 모로코를 제압한다면 독일, 모로코, 한국이 1승2패로 같아진다. 여기서 골득실을 따져야 하는데, 한국이 독일을 최소 5골차로 이긴다면 조 2위의 ‘기적’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은 5년 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한국은 스웨덴, 멕시코와 조별리그 첫 두 경기를 모두 패하며 사기가 바닥을 쳤으나, 당시 FIFA 랭킹 1위였던 독일과 최종전서 2-0으로 이기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달성했다. 이른바 ‘카잔의 기적’이다. 당시 멕시코가 스웨덴에 이기기만 했더라도 한국은 조 2위로 극적인 16강 진출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좀 다르다. 당시 독일과 한국은 최종전을 앞두고 골득실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랬기에 한국이 독일전에서 넣어야 했던 ‘최소 득점’이 그리 크지 않았다. 거기에 손흥민(토트넘)의 득점력도 살아 있었다.
반대로 지금은 골득실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져 있다. 양팀의 전력 차이를 감안하면 5골차 승리는 사실상 힘들다. 더구나 한국의 공격력이 살아난 것도 아니다. 특히 모로코전에서는 무려 슈팅을 14개나 시도했는데 그 중 유효 슈팅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다만, 그냥 승리를 목표로 한다고 하면 가능성은 있다.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은 주도권을 내주고 역습을 노리는 실리 축구로 독일을 무너뜨렸다. 여자축구대표팀이라고 독일을 꺾지 말란 법은 없다.
카잔의 기적은 이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끌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하에서 4년간 철저하게 준비하며 결국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라는 결과물로 돌아왔다. 한국 여자축구도 독일전이 열리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브리즈번의 기적’을 만들면 남자축구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독일과 최종전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이유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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