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시위에 등장한 “푸틴 만세”···프랑스·미국은 전전긍긍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향후 서방을 밀어내고 러시아의 존재감이 커질 가능성이 대두했다. 국제 사회와 주변 국가들은 니제르 군부에 헌정 질서 회복을 촉구했으나, 당분간은 불확실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는 이날 수천명이 모여 쿠데타 지지 시위를 벌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과거 “프랑스를 타도하라”며 프랑스 대사관을 습격해 불을 질렀다. 니제르는 1960년 독립하기 전까지 50년 이상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독립 후에도 프랑스와 밀접한 외교 관계를 이어왔으나, 니제르 내에는 프랑스가 자국의 자원을 제국주의적으로 약탈했다는 반발이 강하다.
이러한 반프랑스 정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날 시위에는 “푸틴 만세”, “러시아 만세”와 같은 친러시아 구호가 등장했다. 일부 시위대는 프랑스 대사관의 명판을 부수고 밟은 다음 러시아와 니제르 국기로 교체하기도 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니제르는 프랑스적 질서 하에서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나는 10년 동안 실직 상태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은 “쿠데타를 일으킨 이들은 우리를 약탈한 프랑스에 반대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며 “프랑스를 아프리카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니제르 쿠데타는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쪼그라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프랑스는 8년여간 지속했던 대테러 작전 ‘바르칸’을 지난해 11월 종료하고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등지에서 철군했다. 해당 지역에서 군부 독재가 부활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밀려난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최후의 보루’ 격으로 니제르에 병력 약 1500명을 남겨두고 기존 바줌 정권과도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는데, 이번 쿠데타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니제르에 있는 프랑스 국민이나 시설이 공격당할 경우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또한 니제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니제르를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세력과 맞서는 대테러전 거점으로 삼아왔다. 니제르에 주둔한 미군은 약 800~1000명 규모다. 미군은 니제르 내 기지에서 테러단체 토벌용 무인기를 운영하며 니제르군을 훈련시켰다. 이는 니제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했고, 정권이 미국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쿠데타 이후 미국은 축출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쿠데타에 러시아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바줌 대통령의 석방과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나 한편에선 러시아의 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러시아의 친정권적 비평가들은 이번 사태를 러시아의 니제르 진출로 묘사하는 내용을 텔레그램에 게시했으며,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또한 “바그너그룹의 효율성이 입증됐다”며 자화자찬했다. 바그너그룹은 아프리카에서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대가로 광물 개발 등 이권을 챙기며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앞장서왔다.
최종적으로 군사 정권이 들어선다면 니제르가 프랑스와 미국이 아닌 러시아에 더 기울게 될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아프리카에서도 친서방과 친러시아 간 세력 경쟁이 심화한 상황에서, 니제르가 러시아에 유착하게 된다면 서방에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BBC는 “니제르가 서방과의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이웃국처럼 러시아의 영향력을 수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군부 지도자들이 무엇이라 말할지 기다려 봐야 한다”고 전했다.
니제르 사태는 다음달 초 첫번째 분기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서아프리카 15개국이 참여하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이날 니제르 쿠데타 세력에게 “일주일 내 헌정 질서를 회복하지 않을 경우 보복하겠다. 보복 수단에는 군대 동원도 포함된다”고 강수를 뒀다. ECOWAS는 과거 내전과 쿠데타에 개입한 사례가 있으나 군대를 동원한 적은 2017년 감비아가 마지막이다. 이밖에도 ECOWAS의 제재, 서방의 원조 중단 등은 세계 최빈국 니제르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앞서 니제르 군부는 지난 26일 쿠데타를 일으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축출했다고 밝혔다. 바줌 대통령은 2021년 자유 선거로 평화롭게 집권했으나 이번 쿠데타로 억류됐다. 쿠데타를 이끈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대통령 경호실장은 스스로 국가 원수에 올랐다.
쿠데타 이전까지 니제르는 주변 지역에 비해 정세가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번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타티아나 스미르노바 퀘백대 연구원은 “군부와의 긴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COWAS의 강력한 개입 이후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여러 주체가 협상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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