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납치’ 피해자 김주삼씨, 67년 만에 국가배상 확정
1950년대 국군 북파공작원에게 납치돼 한국에 살게 된 북한주민 출신 김주삼씨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김씨가 납치된 지 67년 만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공군 첩보대의 북한 민간인 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1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김씨는 중학생이던 1956년 황해도 자택에서 공군 첩보부대 소속 북파공작원에게 납치돼 서울로 끌려왔다. 그는 군부대에 약 4년간 억류돼 조사받고 강제 노동을 했다. 김씨는 풀려난 뒤로도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는 2020년 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씨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1심은 북파공작원의 북한 주민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국가가 김씨에게 1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직 북파공작원들이 1956년 남학생을 납치했다는 공적을 인정받아 보상금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은 김씨를 납치한 행위뿐 아니라 군부대에서 4년간 억류한 데 따른 위자료 3억원을 더해야 한다며 배상액수를 13억원으로 높였다.
2심 재판부는 “김씨는 민간인으로서 군사 정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도 부대에서 약 1년간 조사를 받고, 조사가 끝난 후에도 석방되지 않고 보수도 받지 못한 채 기약 없이 강제노동을 하며 소중한 청춘을 희생당했다”고 했다. 김씨가 석방된 후에도 여러 공장을 전전하는 등 안정적 직업을 얻지 못한 점, 이북 출신으로서 유무형의 차별 및 사회적 냉대를 겪으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온 점도 고려했다.
이어 “김씨는 국가의 납치행위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외로움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는 67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가족들의 생사도 알지 못하고 본인의 생사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바, 이와 같은 고통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국가인 피고는 이러한 의무를 정면으로 저버리고, 오히려 납치 및 억류 행위라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통해 개인인 원고(김씨)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일생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또 국방부 소속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지원단이 전직 북파공작원의 보상금 신청을 조사할 때 김씨에 대한 납치행위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피해 회복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지 67년 만에 김씨가 13억원의 국가배상 판결을 확정받았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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