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요? 부모가 아이 키울 시간부터 보장해주세요”

조해람 기자 2023. 7. 3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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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공청회
각계 전문가도 육아 당사자도 ‘쓴소리’
노동계 “최저임금 미적용 초석 될 우려”
“왜 이렇게까지 기습 강행하나” 지적도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리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시범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와 같이, 가사노동 분야 외국인력 활용 요구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시민·전문가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계획안 공청회’. 발제자로 나선 이상임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이 올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 계획을 설명하자, 15명의 노동·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조용히 종이로 만든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노예제 도입 중단’이라는 문구가 한 글자씩 적힌 손팻말을 나눠 들고 침묵하며 발제를 지켜봤다.

이날 노동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을 두고 열린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반대·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내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이 먼저라는 의견, 직장인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육아휴직·노동시간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정부가 공청회 공지를 촉박하게 알리며 ‘기습 강행’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리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시범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기자

노동부는 가사·돌봄인력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사·육아노동 부담 때문에 경력단절과 저출생 문제가 발생한다고도 봤다. 노동부는 현재 장기체류자와 방문취업동포만 취업 가능한 가사도우미 비자 장벽을 낮추고, 우선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100여명을 6개월 이상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려 한다. 정부 인증기관이 이주노동자들을 채용하고 서울시는 1억5000만원을 들여 숙식·교통비를 지원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가사육아인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정부는 인력이 감소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지, 중년·고령 정주노동자를 이 시장으로 견인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가사서비스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되도록 노동환경 개선이 우선”이라고 했다.

육아 당사자들도 제도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47개월 쌍둥이를 둔 김고은씨는 “아이에 관련된 일은 돈이 비싸다고 안 쓰고 싸다고 쓰는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인데, 이주노동자들이 한두 번 교육으로 한국 문화를 습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지금의 중년여성 일자리를 빼앗고 돌봄의 질이 저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노동시간 등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고은씨는 “가장 좋은 건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게 육아기 단축근무나 유연근무 확대”라며 “노동시간 조율이 가장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7세와 5세 아이를 둔 김진환씨는 “많은 민간기업은 아직도 육아 돌봄 지원을 하지 않는다”라며 “본질은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리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 사업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시범 사업 추진을 강행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참석자들은 특히 이번 시범사업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제외’의 초석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월 100만원 가량의 임금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 최 위원장은 “저비용 노동과 최저임금 적용 제외, 차등화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했다. 가사도우미 매칭 플랫폼을 운영하는 이봉재 홈스토리생활 부대표는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대우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가사도우미들도 최저임금을 보장받으며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졸속으로 제도를 추진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 위원장은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데 짧게 봐도 10년 걸렸는데, 1년만에 제도가 만들어지고 정책이 쏟아져 나온다. 공청회도 5일 전에야 공지가 됐다”라며 “제도 관련 의견을 취합했다고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는 절차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공청회장에서 항의 피켓시위를 벌인 노동·여성단체들은 공청회 전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차별에 눈감고 이주노동자를 ‘가사 노예’와 같은 처지로 내모는 시범사업을 규탄한다”며 “가사·돌봄노동을 외주화하지 말고 공적 책임으로 사회화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부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적합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 알아보려면

정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도입되면 돌봄·가사노동 부담이 줄어 저출생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며 시범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과 저출생 완화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6월 국회 토론회에서도 “돌봄서비스 부족 문제를 값싼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라는 실현 가능성 낮은 논쟁으로 이끌어가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아래 두 기사에서 확인해보세요.


☞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생 해법이라고?…“통계상 관계 없어”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05251534001


☞ “성급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저출생의 ‘만능열쇠’ 아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081412001?www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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