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열대화' 속 사람 잡는 쿠팡 노동환경, 경제신문 눈에는 안 보이나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3분기 연속 흑자' 쿠팡, 쇼핑업계 넘어 주요 글로벌 브랜드와도 어깨 나란히 (23.07.02 세계일보)
"달팡·맥도 로켓배송"…쿠팡, '로켓럭셔리' 내놨다 (23.07.03 한국경제)
"배송, 멤버십도 쿠팡처럼"…이커머스 업계, 너도나도 '쿠팡' 따라하기 (23.07.25 아주경제)
"롯데도 제쳤다"… 우리는 김범석이 만든 쿠팡과 함께 산다 (신동아 23년 7월호)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쿠팡의 기세가 대단하다. '이커머스 공룡'으로 불리며 이제는 오프라인 유통업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쿠팡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는 '와우 멤버십' 회원수는 지난해 말 기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언론은 쿠팡의 빠른 성장세와 영업 전략에 감탄하는 보도를 많이 내놓는다.
쿠팡의 1분기 흑자 달성에 대해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고객 혜택을 축소하는 고객 경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마진 개선을 달성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놀랍다. 그런데 쿠팡의 고객들이 누리는 혜택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마진을 늘렸을까? 시스템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일 수도 있다. 독과점 효과도 있을 것이고, 수만 명의 노동자가 초과 이윤을 창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엄청난 영업이익의 원천은 외부에서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쿠팡의 핵심 서비스인 '로켓배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풀필먼트(집품과 포장 등 물류센터 내 작업)와 라스트마일 배송(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의 모든 단계에 사람의 노동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쿠팡은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상품을 대량 직매입해서 쌓아두었다가 직배송한다. 쿠팡풀필먼트(주)의 고용 인원은 지난해 3만1240명으로 대기업 집단 계열사 중 고용 규모 6위다. 배송 부문을 보면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CLS에 소속된 노동자만 1만 명이 넘는다. 쿠팡이 지금처럼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밤낮으로 노동했다. 그런데도 쿠팡과 관련된 논의에서 '노동자'라는 요인은 거의 항상 누락된다.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 환경
초창기에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일용직 알바 후기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2021년 쿠팡 물류센터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에야 쿠팡의 노동 환경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기자들도 쿠팡 물류센터에 직접 방문하거나 일용직 취업을 해보고 체험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냥 던져요 빨리"···기자 5인이 뛰어든 쿠팡 물류센터 (21.07.06 경향신문)
"쿠팡근로자 일일체험…취재만 아니면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21.03.25 스카이데일리)
'2급 발암물질 노동', 쿠팡 물류센터 야간조 체험기 (21.09.09 참세상)
1600평 작업장에 선풍이 10여대… "더워서 머리 핑 돌아" (22.07.29 조선일보)
<참세상> 기자는 쿠팡 물류센터 야간노동 현장에 다녀왔다. 오후 5시 10분에 출근 셔틀버스에 탑승해서 새벽 6시 30분에 집에 도착했는데 "손가락이 쓰라렸고, 허리, 엉덩이, 종아리, 발목이 욱신거렸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기자는 "취재만 아니면 당장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허리와 팔이 쑤시고 노동 강도가 셌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4시간 반 동안 휴식시간은 0초"였으며 "각자의 안전을 신경 쓰기에도 벅찬 것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의 현실"이었다고 증언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을 체험해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노동 강도와 냉난방 문제, 관리자의 비인간적 태도 등을 지적했다.
더위를 식힐 시간과 공간이 없다
지금과 같은 폭염 시기에 물류센터는 실내지만 고온 다습한 환경이 된다. 그리고 물류센터는 원래 노동 강도가 강한 편이다. 그런데 쿠팡 물류센터의 경우 고온다습한 환경과 노동 강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3가지가 없었다. 첫째, 여름철 냉방시설이 없었고, 둘째, 휴게시간도 없었고, 셋째, 작업장 가까운 곳에 휴게공간이 없었다.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노동조합은 이 3가지의 개선을 요구했다.
그에 대한 쿠팡의 입장은 '물류센터의 구조상 에어컨 설치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니, 쿠팡은 그때그때 다른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대형 천장형 실링팬과 에어 서큘레이터 등의 냉방 장치가 가동 중'이라고도 했고, '에어컨이 이미 설치되어 있다'고도 했다.
쿠팡이 '이미 설치'되어 있다고 말한 에어컨은 휴게실의 에어컨을 의미한다. 쿠팡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뉴스룸'에도 '더위 걱정 1도 없어요! 쿠팡의 여름나기'(22.06.18)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이 올라와 있다. 영상 속 휴게공간은 시원하고 깔끔해 보인다(그림 1). 문제는 그 휴게공간이 작업공간과 별도인 사무동에 위치한다는 것. 실제로 물류센터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휴게공간까지 왔다 갔다 하는 데만 10분 안팎이 소요된다. 긴 휴게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에어컨 설치된 휴게공간'은 현실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렵다.
지난해 7월 29일 <조선일보> 기자가 직접 쿠팡 물류센터를 방문해서 작성한 기사는 폭염 시기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자는 "작업자들의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내부 열기를 식혀 줄 냉방 기구는 레일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선풍기 9대가 전부"였다고 보도했다. "레일과 떨어져 택배 상자를 카트로 운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선풍기 바람도 쐴 수 없었다"고도 전했다. 또 기자는 쿠팡의 다른 물류캠프도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선풍기 한 대만 있었고 에어컨이나 에어 서큘레이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에어컨이 없는 것이 물류센터의 표준은 아니다. 우정사업본부 우편집중국 물류센터의 경우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으며 휴게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이베이 물류센터의 경우 지난해 일부 작업구역을 중심으로 에어컨 공사를 진행했다. 쿠팡의 경쟁업체 중 하나인 마켓컬리 물류센터는 15분의 유급 휴게시간을 제공하며, 작업장과 가까운 휴게공간에 냉방시설이 있다. 즉 다른 물류센터 중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있지만 휴게시간이 없는 곳은 쿠팡 외에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켜지지 않는 '폭염 가이드'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농성과 행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폭염대책을 요구했다. 쿠팡 물류센터의 폭염 시기 노동조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노동부장관과 국회 환노위 의원들이 직접 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부는 지난해 8월 10일자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566조를 개정해,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되는 실내작업자에게도 휴게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실내 작업장의 열사병 예방 가이드(폭염 가이드, 폭염 가이드라인 등으로 불림)를 추가로 만들어 배포했다. 가이드는 "체감온도 33도 또는 폭염주의보"일 때는 매 시간 10분 휴식, "체감온도 35도 또는 폭염경보"일 때는 매 시간 15분 휴식을 부여하라고 안내한다. 공공기관의 실내온도 기준이 28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라는 기준이 소극적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이것은 노동자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폭염 가이드'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이다. 그래서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쿠팡 물류센터에서도 고용노동부의 폭염 가이드라인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에도 식사시간 외 휴식시간 없이 물류센터가 계속 돌아갔다는 증언과 기록이 있다. 고용노동부 폭염 가이드라인에 "매 시간 10분"이나 "매 시간 15분"으로 규정된 폭염 휴게시간이 기존 휴게시간 10분에 5분을 추가해서 15분을 만드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사실상 선풍기가 전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건강권 보장하라' (23.07.25 한국일보)
"새벽 3시에 32.7도…쿠팡은 더운 시간 피해 꼼수 기온측정" (23.07.25 한겨레)
쿠팡물류센터 노조 "폭염에 휴식 보장하라"…내달 1일 파업 (23.07.25 연합뉴스)
쿠팡 물류센터, 폭염 휴게시간 안 주려 '선택적 온도' 맞추나 (23.07.26 매일노동뉴스)
쿠팡 물류센터지회가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폭염 시기 물류센터 노동의 실태를 알리고 8월 1일 하루 파업을 예고(그림 2)하자 여러 언론에서 그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쿠팡의 영업이익에 관심을 보였던 그 많은 '경제' 신문들은 쿠팡 물류센터의 폭염 속 노동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대응도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절박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폭염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고용노동부는 "법적 강제성이 없어서"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답한다. 대신 여름철에 "사업장 집중 지도와 점검"을 시행하며 "현장의 인식 제고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을 기업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고, 기업들의 상황이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고 한다. 정부가 이것저것 따지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부터 폭염 피해를 입고 있다.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고온에 노출되어 카트를 시간당 100개씩 밀고 다니던 청년 노동자가 숨졌다. 무심하게 대응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폭염 가이드가 현장에서 잘 지켜지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아가 강제력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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