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 금통위원 “60년간 세 번 위기 모두 기업부채 문제···中企 주목해야”
관치금융에 취약한 재무구조로 고성장
“중기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 높아”
조윤제(사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1962년부터 60년 동안 발간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 변화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지난 60년 동안 겪었던 3차례 경제·금융위기 모두 관치금융 등 과도한 정책적 지원이 배경이 됐던 만큼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31일 조 위원이 최연교 한은 통화신용연구팀 과장과 함께 작성해 발표한 ‘지난 60년 경제환경변화와 한국기업 재무제표 변화: ’기업경영분석‘(1961-2021)에 나타난 지표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지난 60년 동안 국내 제조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높았다. 이에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960년 12.3%에서 1988년 30.5%로 확대되면서 수출과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됐다.
조 위원은 정부가 1960년대부터 ‘관치금융’이라고 불리는 정부 주도의 금융자원 배분체제를 확립하면서 기업의 성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대신 부채비율, 이자보상배율, 차입금의존도, 유동비율 등 안정성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 기업들이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고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기업들의 성장지원과 위험동반자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외부충격에 취약한 금융체제와 기업의 재무구조로 수차례 부채위기를 넘기다가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됐다. 이후 국내 기업들은 성장성이 낮아지고 안정성이 높아진 형태로 전환했다.
재무제표를 관찰하면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최소한 3번의 경제·금융위기를 겪었다. 우리나라 부채위기의 특징은 다른 나라 달리 가계부채나 정부부채가 아니라 모두 기업부채가 문제가 됐다. 첫 번째 위기인 1970년대 당시엔 기업 부채비율이 1971년 93.7%에서 1972년 394.2%로 급등했다. 1972년 대내외 경제 악화로 기업들이 심각한 부채상환 위기에 놓이면서 정부는 ‘8·3 긴급조치’로 기업들의 사금융시장에 대한 채무 상환유예와 금리 대폭 인하를 강제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위기를 넘겼다.
두 번째 위기는 1980년대 찾아왔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1980년 정국이 불안해지고 경상수지 적자도 확대됐다. 당시에도 제조업 부채비율은 487.9%(1980년)까지 치솟았다. 자기자본비율도 17.0%로 지난 60년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부는 우방국들의 차관 공여, 국제통화기금(IMF) 차관 지원, 강력한 안정화 시책과 구조조정 대책으로 넘겼다. 이때는 남미국가들처럼 외채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은 1997년 외환위기다. 기업부채비율은 1989년 254.3%까지 내렸다가 1990년대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1997년 396.3%까지 높아졌다. 자기자본비율도 28.2%에서 20.2%로 떨어졌다. 당시 중공업 기업들이 장기시설투자자금은 국내 단기 기업어음(CP) 시장에서 조달했고 단기외채도 크게 늘었다. 1996~1997년 경상수지 적자 폭도 확대돼 외화유출이 커지는데 환율 절하를 방어하려다 외환보유고가 소진됐다. 이때 동남아 국가들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한 뒤 IMF 프로그램 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대폭적인 안정화 시책과 기업금융 구조조정 과정에 돌입해 위기를 다시 넘겼다.
조 위원은 이와 함께 인건비용·금융비용의 상대적인 변화 추이도 관찰했다. 기업의 금융비용부담률은 고금리 시기였던 1960년대부터 증가해 1970년(9.2%)과 1971년(9.9%)에 정점에 도달했다. 이후 1970~1980년대 4~5%로 낮아졌다가 1990년대 6%대를 지나 2010년대엔 1.0%대로 급락했다. 국내외 금리가 크게 떨어진 2021년엔 0.7%까지 하락했다.
이와 달리 인건비대매출액은 1970~1980년대까지 10% 수준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운동 격화로 12~14%까지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부터 2013년까진 8~10%를 기록하다가 2015년 이후 다시 10~11%로 상승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과 금융비용 비중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최근엔 인건비가 금융비용의 10배가 넘는 수준이 됐다. 조 위원은 “이는 기업의 수익성을 결정하는데 인건비가 금융비용보다 훨씬 중요한 요인이 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1960년대 이후 점차 하락해 일본이나 미국보다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미국기업들이 최첨단 기술과 경쟁력을 가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조 위원은 “우리 기업도 비용 절감 등 여러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반도체기업과 자동차기업들과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혁신과 개발을 하지 않으면 힘을 덕”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정부의 금융개입과 과도한 정책적 지원이 대기업 안정성을 저하시키고 외부충격이나 경기변동에 취약하게 해 결국 부채위기를 맞게 됐던 것을 상기하면 중소기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도 꼬집었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상대적으로 높은 차입금 의존도, 부채비율, 낮은 이자보상배율이 지속되는데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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