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으로 만든 앞치마…물건이 없으니까 오히려 행복해요
고도성장 시기와 달리 더 가질수록 행복한 시대는 끝나 퇴사하겠습니다>
☞☞1부 ‘집 크기를 줄이고 가능성을 찾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196.html)
―저도 작가님의 책을 읽고 그때부터 가전제품을 최대한 안 써보려 노력하는데요. 그게 참 어려워요.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하려면 당장 귀찮아요.
“빨래하는 옷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요. 다들 세탁기가 있으면 편리하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세탁기 있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해요. 세탁기가 있으면 빨래를 간단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옷이 많아지잖아요. 그러면 옷장도 있어야 하고 생활에 부담이 많아져요. 그래서 옷을 많이 버렸더니 빨래하는 시간이 아주 짧아져서 오히려 편해졌어요.”
―“청소기를 없앤 뒤 빗자루로 청소하면서 오히려 더 청소가 재밌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미루다가 한번에 하는 대청소가 아니라 그때그때 간단히 청소하는 게 핵심 같아요. 저 역시 청소기 없이 빗자루로 집 청소를 하는데 여전히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왜 그럴까요.
“우선 방이 작은 게 좋고요. 그리고 물건이 있으면 청소가 어려워집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미니멀리스트라고 해서 물건을 많이 버리는 스타일이 인기 있는데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렇게 하면 멋있다거나, 그렇게 하면 성공한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어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물건을 버렸어요. 왜냐면 넣는 데가 없어서. 버리고 나니 물건이 없으면 없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손발로 해보려는 것. 어쩌면 세상은, 지금 그걸 ‘불편'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불편'이란 ‘삶' 자체다. 그렇다면 ‘편리'란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중
―‘혼자 사니까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거 아니냐, 가족이 있으면 이렇게 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은 저도 혼자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냉장고 버린다고 하면 남편이 화내면서 이혼하자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래서 2023년 5월에 나온 책(<가사인가, 지옥인가>, 국내 미발간)에서 썼어요.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게 좋아요. 지금까지는 엄마가 주로 집안일을 해왔는데요.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가족 구성원 한명 한명이 자기 일은 자기가 하도록 그에 맞춰 생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얘기 나온 김에 새로 나온 책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월급도 없어지고 물건도 다 버리고 혼자가 됐잖아요. 그때가 만 50살이었는데요. 인생의 위기라고 할 수 있었는데 해보니까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집안일을 혼자 할 수 있다는 게 아주 중요하고 자기 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는 책입니다.”
돈을 쓰면 그냥 쓰레기가 많아지니까
―집 크기를 줄이고 물건을 줄이면 생각이나 가치관도 바뀝니까.
“물건이 없어도 괜찮다,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 때는 물건을 많이 갖고 부자가 되는 것이 행복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걸 목표로 하면 오히려 불행해진다고 할까요. 이제 얻을 수 없으니까요. 없는 것을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오히려 행복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삶을 시작하면서 그걸 느꼈습니다.”
―작가님의 독자층은 주로 누구이고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저 또래 여성이 많은 거 같아요. 존경한다, 동경한다는 반응이 있는데요. 제가 동경받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풍부해졌잖아요. 그럼에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불안이 계속 있어요. 그런 불안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기를 거의 안 쓰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렇게 에너지를 줄이는 게 일본에서 보편적 인식인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는 지진 이후 계획정전도 있었고, 특히 도쿄 주변에 있는 분들이 에너지 절약에 많이 신경 썼어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문제로 전기 비용이 올라가서 나름대로 에너지 사용을 조절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에너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일본을 포함해서 세계 사람들이 여전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그건 너무나 낙관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가 작가님처럼 소비를 안 하면 생산이 줄어들고 결국 성장을 못해 경제가 돌아가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시나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해요. 자본주의라면 물건을 사서 경제가 잘 돌아가 행복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분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의문이 있어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건 여러 방법이 있잖아요. 필요한 곳에 돈이 가도록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돈을 안 쓰니 돈이 쌓이는데 저는 그 돈을 기부하고 있어요. 물건을 사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돈이 모자라는 곳, 돈이 필요한 곳에 주는 것도 경제를 도와주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2022년에 쓴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책이 많이 팔렸어요. 인세가 들어왔는데 보너스라고 생각해서 제가 피아노 치는 곳에 그랜드피아노를 사드렸어요. 그러면 선생님도 좋고 피아노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편하게 배울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자본주의에 공헌하고 싶어요. 내가 돈을 쓰면 그냥 쓰레기가 많아지니까요.”
“경제성장의 별명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거기서 얻은 돈으로 소비합니다. 모두가 성장할 수 있던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제가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가 필요한 것들을 손에 넣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 승패를 가르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있으면 편리하다’는, 그것 말입니다…. 그 결과, 경제성장에 휘말린 사람들은 점점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경제성장은 우리의 자립이 아니라 의존을 낳아버린 게 아닐까요?” ―<퇴사하겠습니다> 중
지구 한명 한명의 욕심이 나쁜 방향 만들어
―2018년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명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음, 그때보다 더 비관적이에요. 코로나19도 그렇고 전쟁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 지구온난화는 눈에 보이는 정도로 심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 인간의 욕망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표면화되는 게 지구가 하는 경고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빠르게 붕괴할 것 같고 굉장히 비극적인 걸 목격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 원인은 특정 나라의 정부나 지도자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지구에 사는 사람 한명 한명의 욕심이 나쁜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전달하는 아주 작은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도쿄(일본)=글·사진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