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폭염...“땀 안나는데 체온 40도, 곧장 응급실 가세요”

김명지 기자 2023. 7. 3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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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온열질환자 속출...사망자 벌써 10명
체온 계속 오르고 의식 흐려지면 ‘열사병’ 의심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 취약”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기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사는 이모(54)씨는 며칠 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다가 어지럼증과 경련으로 인근 대형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씨는 오전부터 쏟아지는 뙤약볕에 숨이 막히고 정신이 혼미해 주변에 주저앉았다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열탈진이었다. 당시 서울의 한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다.

전국이 폭염으로 뜨겁게 달궈지면서 열사병과 탈진·실신 같은 온열(溫熱) 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김원영 교수는 “서울과 같은 도심에서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흔치 않다”면서도 “더운 날씨에 마라톤을 하다가 이송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폭염에 온열 환자 급증 주의보

3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을 시작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29일까지는 총 1015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1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사망자 10명 중 7명이 28~29일 이틀 동안 나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온열질환으로 신고된 1017명 환자 가운데, 6명이 숨졌다. 올해는 아직 8월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온열질환 피해가 지난해를 넘어섰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30일에도 온열질환으로 숨지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공식 온열 질환 집계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온열 질환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장마가 사실상 끝나면서 더운 공기를 품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쪽으로 본격적으로 확장, 한 단계 더 강한 폭염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면 더위의 양상도 달라진다. 장마철 더위가 후텁지근한 ‘찜통더위’였다면, 지난주부터는 구름 없는 맑은 하늘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지면을 잠시나마 식혀줬던 국지성 소나기 역시 거의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8시 주요 도시 기온은 서울 26.8도, 인천 26.6도, 대전 25.5도, 광주 27도, 대구 28.4도, 울산 28.7도, 부산 29.1도로 남부지방 도시들은 이미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낮 최고기온은 29~35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온열 질환 감시 체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환자(4526명)가 발생한 지난 2018년엔 국내 최고 기온은 41도(홍천)를 기록했고, 서울은 39.6도까지 올랐다.

◇ “그늘 바람 통하는 곳 찾아 쉬어야”

온열 질환은 방치하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심·뇌혈관 질환, 고혈압‧저혈압, 당뇨병, 신장 질환 등 만성 질환자는 더위로 증상이 나빠질 수 있어 더 조심해야 한다. 60세 이상 어르신과 10세 미만 어린이도 취약하다.

박훈기 한양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온열질환은 심부체온이 올라가면서 대사 시스템에 일시적으로 교란이 온 것이고 심할 경우 심근경색까지 올 수 있다”라며 “혈압 조절이 잘 안 되는 고혈압과 저혈압, 심·뇌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이 있으면 더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 그늘, 휴식은 온열 질환을 예방하는 3대 요건이다.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하고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등 증상이 있을 때에는 즉시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쉬어야 한다. 물을 주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지러움 등이 느낄 정도라면 이온음료를 마셔서 탈수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름철 온열질환 예방 안내문. /괴산소방서 제공

박 교수는 “요즘처럼 기온이 30도를 웃돌때는 실외 업무시간 자체를 서늘한 시간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외 활동은 오전 10시 이전, 오후 5시 이후로 옮기고, 부득이하게 실외에서 일할 때는 철저히 햇빛을 가리고 음료수를 챙기는 한편, 혼자보다는 되도록 2인 1조로 일해야 한다. 박 교수는 “기온이 높을 때는 갈증을 느꼈을 때가 아니라 30분 단위로 일부러 수분과 전해질을 섭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온열 질환자를 발견했다면 즉시 시원한 장소로 옮기고, 물수건·물·얼음 등으로 몸을 닦고,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체온을 내려줘야 한다.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혈관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의식이 없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옮긴다. 온열질환으로 의식을 잃은 경우 음료수를 억지로 먹여서는 안 된다. 질식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마라톤을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그만둬야 한다”며 “아마추어 선수처럼 꼭 완주를 하려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평소에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라면 여름철에 마라톤을 도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아이에게 수시로 물 챙겨줘야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몸 크기 대비 체표면적이 넓어서 열 흡수를 잘하고, 신체 활동을 하는 동안 열을 많이 생산한다. 그러나 그에 비해 땀으로 열을 발산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체온 조절이 쉽지 않다. 또 아이들은 성인보다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해서 더위에 매우 취약하다.

조선DB

박 교수는 “아이들은 지치는 것을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놓고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며 “아이들과 여름철 등산할 때 어른들과 같은 수준으로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실외 활동은 30~40분 정도로 정해놓고 들어와서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소아청소년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실외 온도가 26도를 넘으면 어린이의 야외 활동을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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