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 30년 만에 물러나
무리한 정부 지원·환율 정책으로 명성 무너져
정부 공백 상태 장기화…후임자 지명 못 해
30년간 레바논 경제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라이드 살라메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가 3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레바논은 2020년 220명이 사망한 베이루트항 창고 폭발 사고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정치권의 극심한 혼란으로 후임 총재조차 지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살라메 총재가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1993년 중앙은행 수장으로 임명된 살라메 총재는 지난 30년간 레바논 경제를 이끌어 온 베테랑이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출신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과 당시 정권을 잡았던 기독교 민병대 간의 내전으로 쑥대밭이 됐다. FT는 “살라메 총재는 내전으로 무너진 경제를 일으킨 공로가 있는 인물”이라며 “그는 재임 기간 12명의 총리를 거쳤고, 한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살라메 총재의 명성은 2010년대 후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레바논 정부가 막대한 지출과 비생산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도 그가 통화량을 늘려 무리하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현실과 동떨어진 환율 정책으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파운드는 2019년 이후 달러 대비 가치가 98% 이상 하락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지난 2월 예금 인출이 막히자 은행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살라메 총재는 또 개인 비리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살라메 총재는 권력을 남용해 유럽에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검찰이 각각 체포 영장을 발부할 정도로 혐의가 무거웠다. 그는 지난 26일 레바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희생양이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살라메 총재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정부가 사실상 공백상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미셸 아운 전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 레바논 대통령 자리는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재벌 출신인 나지브 미카티가 2021년 7월 총리로 임명됐지만, 종교·계파 간 갈등으로 ‘임시’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FT는 “각종 논란에도 레바논에선 살라메 총재를 유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며 “후임자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레바논의 만성적인 정치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레바논 당국은 일단 부총재 4명의 집단 관리 체제로 중앙은행을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정부 개혁 없이 어떻게 레바논 파운드를 안정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지금은 정책 자체가 없다. 정부가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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