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리고 뺨 때리고… ‘보육교권’ 붕괴

전수한 기자 2023. 7. 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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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으라고 이 ×아, 서서 하는 사과는 안 받아. 무릎 안 꿇으면 경찰 부를 거야."

임신 중이었던 10년차 어린이집 보육교사 A(32) 씨가 올해 4월 학부모로부터 얼굴에 물을 맞으면서 들은 말이다.

지난해 7월 남양주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B(30) 씨는 2년 동안이나 악성 학부모에게 시달렸다.

의정부 한 어린이집의 교사 C(25) 씨는 급식 메뉴에 나온 시래깃국을 아이가 부모에게 "점심으로 쓰레기국이 나왔다"고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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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갑질에 우는 어린이집 교사
야외서 혼자 넘어져 얼굴 다치자
석 달 동안 학부모의 폭언·괴롭힘
임신 중이던 보육교사 결국 유산

“무릎 꿇으라고 이 ×아, 서서 하는 사과는 안 받아. 무릎 안 꿇으면 경찰 부를 거야.”

임신 중이었던 10년차 어린이집 보육교사 A(32) 씨가 올해 4월 학부모로부터 얼굴에 물을 맞으면서 들은 말이다. 원생들을 데리고 야외 활동 지도를 하던 A 씨가 다른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있던 어느 날,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아이가 혼자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다음 날 아이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얼굴에 물을 뿌리며 “아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원장과 동료 교사들이 나서서 CCTV를 보여주며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들의 괴롭힘은 석 달 동안이나 이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날엔 뺨을 때리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할 순 없었지만 끝내 A 씨는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A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유산했다.

31일 교육계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 뿐만 아니라 보육교사들도 학부모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남양주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B(30) 씨는 2년 동안이나 악성 학부모에게 시달렸다. B 씨가 거짓말을 한 아이에게 “자꾸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교육했던 것을 구실로 “(아이가) TV에 ‘엉덩이탐정’(만화 캐릭터)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면서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었다.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줬으니까 너도 자살하게 만들어줄게”라는 폭언까지 들어가며 2년간 시달린 B 씨는 결국 해당 어린이집을 떠났다. 어린이집은 학부모의 화를 달래기 위해 1200만 원의 피해보상금을 제안했고, 이후로 해당 학부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충분한 해명과 증거를 보여줘도 생떼를 부리며 사실상 합의금을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돈을 목적으로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며 작정하는 학부모의 민원은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의정부 한 어린이집의 교사 C(25) 씨는 급식 메뉴에 나온 시래깃국을 아이가 부모에게 “점심으로 쓰레기국이 나왔다”고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 합의금을 요구하는 듯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학부모는 지역사회 맘카페에 ‘저격’ 글을 올렸다. 이 ‘가짜 뉴스’로 어린이집은 ‘나쁜 어린이집’ 낙인이 찍혔고, 결국 원아 부족으로 폐업했다.

한국보육진흥원이 지난 2020년 세종시 보육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현직 교사 102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어린이집에서 마찰·갈등 경험이 있다’고 답한 보육교사는 전체의 68.3%였으며, 이 중 ‘학부모와의 마찰·갈등’이 31.1%로 가장 많았다.

진흥원 관계자는 “보육교사는 영유아 교육에 있어선 전문가들”이라며 “두 살배기 아이와 눈을 맞추는 것부터 교육의 시작인데, 이들을 전문가가 아닌 돌보미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부당한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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