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적 합의 급한 방폐장法[뉴스와 시각]

박수진 기자 2023. 7. 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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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찾은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2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는 방사선 차폐(遮蔽) 역할을 하는 붕산수, 방사선 입자가 물속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이며 나타나는 '체렌코프 현상'이 어우러져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에 영구 정지된 월성·고리 1호기까지 포함하면 32기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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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경제부 차장

지난 12일 찾은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2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는 방사선 차폐(遮蔽) 역할을 하는 붕산수, 방사선 입자가 물속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이며 나타나는 ‘체렌코프 현상’이 어우러져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빛깔과 달리 수면 아래는 다 쓴 핵연료 869다발이 저장돼 있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 농도에 따라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 옷, 기기 등의 중·저준위와 고준위로 나뉘는데, 사용후핵연료는 대표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명칭에서도 느껴지다시피 높은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기에 사람이 피폭되면 위험하다. 그래서 반드시 인간 생활권으로부터 영구 격리하는 시설을 지하 500∼1000m에 지어 보관해야 한다. 경주에 폐기물 처분시설이 있긴 하지만 중·저준위용이고, 고리 2호기 같은 저장조는 방사선 방출을 막아주긴 하지만 영구 처분 전 열과 방사선을 낮추기 위해 잠시 담아 둔 임시 시설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1980∼1990년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시작했다. 수십 년의 논의 끝에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2024년부터 가동에 들어가고 프랑스는 부지를 확보했으며 스위스·캐나다·일본 등 주요국들이 부지 선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된 후 유사한 법안이 총 3건 상정돼 있지만, 여야 힘겨루기 속 공회전만 하고 있다.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하기 위한 부지 선정 절차, 운영 일정, 처분장이 들어설 지역 지원 체계, 독립 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법 제정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처분장 건설을 위한 첫 단추인 부지 선정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8개월 남짓. 제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특별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추진됐고, 처음 발의한 의원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최근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한다는 것을 빌미로 반대하며 법안은 표류 중이다. 7월 임시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졌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화장실 없는 아파트’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가동 원전은 총 25기다. 윤석열 정부가 고리 2호기 등 설계수명 종료 원전 10기를 계속 운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현재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 신한울 2·3·4호기까지 합하면 2033년 가동 원전은 30기로 불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영구 정지된 월성·고리 1호기까지 포함하면 32기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신규 원전 건설이 확정되면 영구 처분해야 할 사용후핵연료는 더 늘어난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 개시 후 지금까지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이미 1만8000t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임시 저장시설은 2030년부터 차례대로 포화를 앞두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으면 당장 7년 뒤 원전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다. 현세대가 값싼 전기요금의 혜택은 다 누리고 부담은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셈이다.

박수진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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