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좌향 앞으로'에 숨은 깜짝 놀랄 스윙의 힌트
[골프한국] 다족류 절지동물인 지네는 이솝우화에 자주 등장한다. 지네의 상대역은 거미 개구리 토끼 여우 등 다양하지만 내용이나 메시지는 같다.
개구리가 하루는 지네가 우아하게 기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개구리는 100개가 넘는 다리를 가진 지네가 엉키거나 틀리는 일 없이 물 흐르듯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개구리가 물었다.
"지네 선생, 어떻게 그 많은 다리를 엉키지도 않고 잘 움직일 수 있나요? 내가 세어보니 다리가 100개도 넘는 것 같은데…."
지네가 입을 열었다.
"개구리 양반,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대단하시오. 그 많은 다리를 금방 다 세다니. 그대는 수학자나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소."
놀라움을 금치 못한 지네는 무수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그럼 내가 한 번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겠소." 하고는 시범을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음 발 움직이고, 그리고 어! 어!"
지네는 깜짝 놀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리가 꼬여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걷는 방법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소. 그냥 저절로 걸을 수 있었고 아무 문제도 없었소. 그런데 걷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걸으려니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소. 지금까지 어떻게 걸었었는지 방법을 잊어버렸소."
이 우화는 인간에게 교훈을 준다. 의식이 지배하는 행동과 의식 없이 직관으로 이뤄지는 자연스런 행동, 지나치게 부분에 집착하는 시각과 전체를 보는 시각, 분석적 논리적 과학적 사고가 갖는 함정과 자연스런 조화와 통섭의 미덕 등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골퍼들이 지네의 함정에 빠진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 레슨프로들이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 모든 동작을 가르치는 관습이 만든 함정이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지듯, 어린 시절 불이 든 깡통을 돌리는 쥐불놀이를 하듯 직관적으로 하면 될 동작을 레슨프로들은 동작을 잘게 인수분해해 가르치려 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골프의 동작을 인수분해하면 끝이 없다. 그립에서부터 스탠스, 정확한 에이밍, 다양한 스윙의 구현, 파워를 내기 위한 몸통 회전, 스윙스피드 높이기, 방향성 유지하기, 몸의 축 지키기 등 골프와 관련된 지침들을 세분화하면 수십 가지가 넘을 것이다. 여기에 골퍼로서 갖춰야 할 에티켓과 주변 상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신자세 등까지 포함하면 골프의 체크리스트는 지네 다리 수 못지않을 것이다.
골퍼들 대부분이 골프를 익혀가는 과정에서 '지네의 혼란'에 빠진다. 초보시절에 더 심하지만 싱글 핸디캡에 이르러서도 계절 질환처럼 이 덫에 걸려든다. 자신도 모르게 틀어진 스윙, 잘못된 자세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동작이나 자세를 세분해서 관찰하며 바로잡다가 그만 지네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충분히 백스윙을 한 뒤 미끄러지듯 채를 끌어내리고, 다운스윙 시 팔꿈치의 궤도는 오른쪽 갈비뼈를 스치듯, 팔이 내려오기 전에 골반을 먼저 회전시키고, 헤드가 볼을 지날 때까지 코킹을 유지하며, 클럽을 목표 방향으로 내던질 때까지 척추각을 그대로 유지하되 어느 동작에서도 옹이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등 지침이나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최근 지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원하는 스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냈다. 골프를 연마하는 데는 구체적인 동작 못지않게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데 우연히 군대에서 경험한 제식훈련에서 스윙에 필요한 몸통 회전의 비결을 찾아냈다.
골프 스윙의 기본원리는 제식훈련의 여러 기본 동작 중 '좌향 앞으로'와 일치함을 깨달은 것이다. '좌향 앞으로'는 종대로 행진하다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바꾸어 행진하는 것이다. 골프에 대입해 설명하려면 3열 종대를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다.
3열 종대로 행진하다 '좌향 앞으로' 구령이 떨어지면 기본열인 제1열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방향만 90대로 회전하고, 제2열은 적당한 보폭으로 회전하고 바깥 줄인 제3열은 긴 보폭으로 빠르게 회전해야 한다.
이 동작을 골프 스윙에 대입하면 제1열은 왼쪽 다리, 제2열은 오른쪽 다리, 제3열은 골프채를 잡은 두 팔에 해당된다. 이 순서대로 몸통을 좌향좌로 회전시키는 게 바로 스윙의 기본원리가 아니겠는가.
어느 것 하나 이 순서에서 앞서거나 뒤처지면 행렬이 흐트러지듯 스윙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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