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신상부터 갓생까지…" 신조어에 담긴 고달픈 민생

김미란 기자 2023. 7. 3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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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천태만상 [세태+]
코로나19 신조어 경제학➋
2021년 이후 신조어 백태
코로나19 장기화 국면 진입
사회적 거리두기 전국적 강화
N차 신상 등 중고거래 활발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 등
허리띠 졸라매는 신조어 속출

저성장이 이어지던 가운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까지 발생하며 우리의 일상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청년실신' '이생망' 등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세태를 반영한 자조섞인 신조어가 연이어 등장했고, 치솟는 집값에 내집 없는 사람은 '벼락거지'가 됐다. 코로나19와 신조어 시리즈 1편에 이어 2편에선 2021년부터 현재까지의 신조어를 파헤쳐본다.

청년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갓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9년엔 부富를 과시하는 신조어 '플렉스(flex)'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며 신음했다.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엔 양극화가 더 심화했다. 폭등한 집값에 누군가는 벼락부자가 됐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벼락거지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 코로나19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일상생활도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 N차 신상과 럭비남 = 2021년은 코스피지수 '3000'과 함께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폭풍 앞에 코스피지수는 2020년 3월 19일 장중 최저치인 1439.43까지 하락했지만 2021년 1월 6일 장중 사상 최초로 3000을 돌파했다.

코로나19로 침체했던 글로벌 경기와 국내 경기가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을 발판으로 지수가 상승했다. 실제로 많은 경제연구기관이 2021년엔 국내경제가 3~4%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해 7월 출몰한 '또 다른 바이러스'가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코로나19 델타변이가 확산하면서 7월 12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4단계로 격상했다. 오후 6시까진 4명까지, 오후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사적모임을 허용했다. 모든 스포츠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졌고, 노래방ㆍ식당ㆍ카페ㆍ실내체육시설ㆍ영화관ㆍPC방ㆍ학원 등은 오후 10시 이후 운영을 제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걸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코로나19란 몹쓸 바이러스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고, 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방증하듯 소비트렌드에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2021년부턴 'N차 신상'이란 신조어가 주목받았다. '신상'이란 말이 붙었지만 진짜 신상이 아니라 몇번의 거래를 거친 신상, 이를테면 중고를 의미하는 말이다. 중고거래의 유행으로 N차 신상이란 말은 또 한번 세컨드핸드(secondhand)란 말로 변주되기도 했다.

물론 그전까지도 중고거래는 있었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마켓의 이용자가 해마다 증가할 정도로 중고거래 시장은 성장세였다. 다만 'N차 신상'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소비자가 중고물건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게 이 무렵이다.

덩달아 리셀(resellㆍ희소성이 있거나 인기 있는 제품을 구입한 후 다른 사람에게 웃돈을 받고 재판매하는 것) 시장도 커졌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리셀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성장했고 2025년엔 2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1년에 생긴 신조어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럭비남'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성을 표현한 말 같지만 아니다. 럭비공은 '럭셔리 제품을 선호하는 비혼ㆍ비출산 남성'을 줄인 말이다.

1982~1991년생이 주축인 이들은 결혼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고, 내집 마련의 꿈도 미뤘다. 대신 그 돈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럭셔리 제품을 구입한다. 이 신조어엔 점점 낮아지는 혼인율 문제도 투영돼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의 혼인 건수는 총 19만2507건이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율을 나타내는 조혼인율(Crude marriage rate)은 3.8%였다. 10년 전인 2011년의 32만9087건, 6.6%와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엔 그 수치가 각각 19만1690건, 3.7%으로 감소했다.

■ 점점 더 독하게 = 2022년엔 '고물가'가 우리 일상을 흔들었다. 코로나19에서 기인한 물류대란이 온전히 해결되기도 전에 연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식량 대란까지 터졌다. 두 나라가 곡물 주요 생산지였던 탓에 국제곡물 가격은 속절없이 치솟았고, 그 결과 세계적인 식량위기와 인플레이션이 불거졌다.

고물가는 청년들을 더욱 위기에 빠뜨린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순 없었다. 국제곡물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2022년 소비자물가는 외환위기(IMF) 후폭풍이 한국경제를 휩쓸던 1998년 7.5%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최고치(5.1%)를 찍었다. 생활물가지수는 6.0%로 평균보다 높았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공식품은 7.8 %, 외식물가는 7.7% 올랐다. 석유류 가격과 공공요금도 치솟았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석유류는 전년 대비 22.2% 올랐는데, 등유와 경유 가격이 각각 56.2%, 31.9% 상승하며 특히 많이 올랐다. 전기ㆍ가스ㆍ수도요금도 같은 기간 12.6% 인상됐다.

생활전반에서 물가가 오르니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줄이거나 모아보려는 노력이 '짠테크'와 '앱테크'라는 신조어로 나타났다. '짠테크'는 극도로 절약하는 소비생활을 일컫는 '짜다'와 재테크의 '테크'를 합친 말이고, '앱테크'는 앱을 활용한 짠테크를 말한다. 설문조사에 참여하거나 출석체크를 해서 적립금을 모으고, 1만보를 걸어 포인트를 받는 것, 카드사 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해 사용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럼 2023년 지금은 어떨까.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짠테크는 올해 더 혹독해졌다. 한푼 두푼 모으다 이젠 '지출 제로(0)'에 도전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름하여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진 거다. 또 하나 등장한 것이 있는데, 바로 '거지방'이다. 이곳에선 짠내나는 소비생활을 공유한다. 서로 서로 소비패턴을 지적해주다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공감하며 새로운 친목을 쌓는다.

최근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신조어 중 하나는 '갓생'이다. 갓생은 갓(God)과 인생(生)을 합친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걸 뜻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갓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석호 서울대(사회학) 교수는 "코로나19라는 충격파는 계층적으로 차별화된 영향을 미쳤는데, 안전하고 단단한 울타리가 있는 계층보단 그렇지 못한 계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서 "그 결과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했다"고 분석했다.

김석호 교수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굉장한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은 하위 계층에 더 가혹하게 다가왔고, 그것이 갓생을 살게 하고 거지방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잘사는 사람들의 삶이 질적으로 좋아진 반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은 좀 더 가혹해졌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1분기부터 0% 성장률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률(-0.3%, 실질ㆍ계절 조정)을 기록했다. 올 1분기도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갓생, 이 신조어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시절이다.

코로나19와 신조어 마지막 편인 3편에서는 한국경제와 함께 신조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1990년부터 코로나19가 들이닥치기 전까지의 신조어 속으로 들어가보자. <다음호에 계속>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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