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부추긴 샤넬, 이제 '사전 접수' 안 한다는데[최수진의 패션채널]
2020년 초반까지만 해도 '오픈런'이라는 말은 럭셔리 시계를 좋아하거나, 명품 브랜드 정보를 공유하는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사용됐습니다. 오픈런은 물량이 부족한 특정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영업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매장 문이 열리면 달려가 구매한다는 의미입니다.
코로나19 전까지는 이런 오픈런 행위가 일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시계, 특히나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를 좋아하는 일부 소비자들만 직접 실행에 옮겼으니까요. 루이비통, 샤넬 등 일반 명품 브랜드에선 찾기 힘든 문화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명품업계보다 공연이나 연극에서 '상시 상영'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했죠.
일반 소비자들까지 평범하지 않던 '오픈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20년 늦봄부터 입니다. 우선, 하늘길이 막힌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전까지는 해외여행을 할 때 명품을 구매했는데,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기존의 명품 소비자들이 국내로 눈을 돌린 거죠.
이 같은 상황에 물량도 부족했죠.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수요가 공급을 크게 넘어서자 구매 경쟁이 더 심화된 것인데요. 명품은 원래도 국내로 들어오는 물량이 적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가격'이죠. 이런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 제일 싸다', '일단 사놓으면 반드시 오른다' 등의 말이 나오기 시작한거죠. 오픈런 문화의 대중화가 시작된 겁니다.
소비자들을 '오픈런'하게 부추긴 브랜드를 하나만 딱 꼽자면, 단연 '샤넬'입니다. 샤넬은 코로나19 반사이익을 크게 누렸습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2019년까지만 해도 샤넬은 '일부만 좋아하는' 브랜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3초백(길에서 3초에 한번씩 보인다는 뜻)' 이미지가 생겼으니까요.
오픈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2020년 5월'. 샤넬이 스테디셀러 제품들의 가격을 인상한 때입니다. 2019년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최대 18%의 가격을 올린다는 소식에 수백명의 인파가 백화점으로 몰린 겁니다.
이후 샤넬의 인기는 치솟습니다. 오전 6~7시 사이에 백화점에 도착해야 대기 순번 10번 안쪽이고요, 9시 이후에 온다면 볼일 보고 점심 먹은 뒤 커피까지 마셔도 입장 순서가 안 돼 들어가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겨우 매장에 들어가도 내가 원하는 제품이 없을 확률이 큽니다. 앞서 다녀간 고객들이 남아있는 제품을 쓸어간 거죠. 그중에는 전문 리셀러까지 있었으니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얻는 것, '하늘에 별 따기'였죠.
그 결과 샤넬의 실적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샤넬코리아의 2019년 영업이익은 1109억원에서 이듬해 1491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2021년 2489억원, 지난해 4129억원으로 크게 급등했습니다. 3년 만에 영업이익이 4배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매출은 2019년 1조639억원에서 지난해 1조5913억원으로 늘어났고요.
분명 오픈런으로 샤넬의 실적은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미지에는 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샤넬'을 들기 시작하자 오히려 '진짜 부자'는 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거죠. 특히 샀다가 되파는 '리셀 브랜드'로 낙인찍힌 것도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인지 샤넬이 이제부턴 고객들의 오픈런을 지원하지 않는다네요. 샤넬은 이달 초 '사전 접수 제도'를 폐지햇습니다. '사전 접수'는 오픈런 고객들의 구매 편의를 위해 백화점 오픈 시간(10시 30분) 전에 직원이 나와 기다리는 고객들의 대기 등록을 돕는 행위인데요. 오픈런이 일반화된 2020년 시작한 제도입니다.
샤넬은 "영업시간 전 진행해 온 사전 접수 운영은 방문 고객 수요가 줄어 중단한다"라며 "백화점 개점 후 샤넬 매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입장을 도울 것"이라고 안내했습니다. 3년 만에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 거죠. 그래도 아마 '샤넬 오픈런'은 계속될 겁니다. 샤넬이 가격 인상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백화점 앞에 줄이 있을 거고요.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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