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고속도 논쟁, 기후위기 시대엔 새로운 발상 필요[할 말 있습니다](38)
2017년 계획된 서울-양평고속도로의 경기 양평군 양서면 종점 계획안이 2023년 5월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된 이후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속도로 사업 자체를 돌연 백지화함에 따라 여야는 극심하게 대립했고,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김건희 여사 일가의 수혜 여부를 놓고 갈라진 양 진영은 교통 분담 효과, 건설비용, 자연환경 피해, 공학적 우위, 주민 편의성 등의 근거를 들며 연일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 국민은 나들목(IC)과 분기점(JCT)의 구조적 차이와 지가 상승의 효과에 대해 난데없이 학습을 강요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공방 가운데 정작 근본적인 질문은 도외시되고 있다. 자가용 중심의 고속도로 건설이 과연 양평군민을 포함한 시민의 교통권을 진정으로 보장하는 방식인지, ‘개발’이란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실은 대기업과 토호들 그리고 부동산 투기자들이 개발의 이익을 독식할 뿐인 토건사업을 지속해도 되는지, 원안이건 변경안이건 결국 ‘더 많은 자동차의 더 많은 탄소 배출’을 의미하는데, 기후위기의 시대에 이것이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지 등이다. 결국 대립하는 양 진영은 같은 진영에 서 있는 셈이다.
‘브라에스의 역설’과 지가 상승 위한 싸움
‘브라에스의 역설’이 있다.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Dietrich Braess)가 1968년에 발표한 이론에 따르면 새 도로를 추가할수록 교통량이 늘어나 오히려 전체적인 차량 흐름이 느려지고, 거꾸로 도로를 축소하거나 폐쇄하면 교통체증이 완화된다. 이것은 1990년에 ‘루이스-모그리지 명제(Lewis-Mogridge position)’로 확증됐는데, ‘수요 유도(induced demand)’ 효과로도 불린다. 자동차도로의 공급이 자동차 교통의 수요를 유도한다는 이론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인 미국 텍사스의 케이티 고속도로(Katy Freeway)는 무려 26차선인데도, 교통 혼잡으로 악명이 높다. 이것을 서울-양평고속도로에 적용해보면, 이 고속도로가 생겨도 당장은 6번 국도의 혼잡이 분산되겠지만 결국은 수도권의 대량 차량 유입을 가져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양평 주민들의 통행권 신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하다.
수도권의 대량 차량 유입은 고속도로 나들목과 양평 주변의 땅을 많이 가진 소수의 사람에게 큰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다. 따라서 양 진영이 원안과 변경안 사이에서 ‘누가 지가 상승의 덕을 보는가’를 놓고 싸우는 게 차라리 솔직한 모습이라 하겠다. 뭘 선택하든 일반 시민들의 삶에는 악영향을 주는 토건사업이다. 고속도로는 건설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소음과 분진 등 난개발의 피해를 시민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급증한 교통량 증가 피해는 시민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무엇보다 교통 부문 탄소 배출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자가용 부문의 극적인 배출 저감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가용 사용을 부추기는 전용 고속도로의 건설은 모든 사람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자동차가 도로 위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21년 기준 에너지원별 발전 비율은 석탄이 41.9%, LNG가 18.2%다. 전기자동차는 주로 전기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로 굴러가는 셈이다. 재생에너지로만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전기자동차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전기자동차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다 생산하려면 엄청난 면적의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이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동산 투기와 기후위기 악화라는 악영향만을 낳는다면, 자가용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이동 경로는 줄이고, 주민의 이동성을 높이며, 도시의 편익에 대한 접근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공공교통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철도 교통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영국 정부의 2019년 온실가스 보고서 데이터에 따른 2018년 교통수단별 인㎞(인원에 거리를 곱한 값)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여주는 도표를 보면, 승용차를 이용하는 대신 기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 승용차의 크기와 승객 수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75%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를 타면 84%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유럽에서는 철도를 재생에너지로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2040년까지 모든 전기 열차를 풍력 에너지로 운행할 계획이다. 또한 철도는 항공기나 승용차와 달리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다양한 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열차 증편과 철도역 중심 통합 교통망을
‘철도 관련 구상’을 양평에 적용해보자. 양평은 중앙선 철도가 지나간다. 그 위로 경의중앙선 수도권 전철, 강릉·동해행 및 안동행 KTX 이음, ITX 새마을호, 중앙선 및 태백선 무궁화호 등이 운행 중이다. 다양한 열차편이 다니지만 열차 수는 너무 적다. 하루에 ITX 새마을호가 두 번, 무궁화호가 세 번 운행할 뿐이다. 열차를 증편해야 하는 이유다. 다만 청량리에서 덕소까지가 ‘병목’ 구간이므로, 이를 위해선 추가로 선로를 확충해야 한다. 또 행선지를 다양화해야 한다. 서울 강남 방면은 한때 계획됐던 수서-용문선 전철을 건설하고, 수도권 서남부 방향은 인천에서 출발해 시흥, 광명, 안양 등을 거쳐 판교로 이어지는 월곶판교선(2021년 착공)을 완공하면, 판교에서 여주까지 운행 중인 경강선 전철의 경기광주역에서 양평과 연결할 수 있다.
철도역과의 연결은 이처럼 중요하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교통 거점을 형성하고, 버스나 자전거, 보행 등 탄소 배출량이 낮은 여러 이동 수단을 결합한 통합 교통망을 구축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교통권도 확장하는 교통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또 광역 단위에서, 그리고 도시 내부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철도가 동맥이라면 연계 교통체계는 모세혈관이다. 시내 연결이 원활해야 철도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도시에 따라서는 시외에서는 본선 기차로 운영하고, 시내에서는 노면전차로 바로 이어지는 ‘트램-트레인(tram-train)’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시가 시작한 이 방식은 세계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한국의 철도는 지극히 서울 중심이다. 언뜻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만, 전국을 놓고 보면 부산과 광주를 잇는 고속철도조차 없는 실정이다. 철도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코레일은 수익성을 이유로 무궁화호·새마을호를 줄이거나 없애고, KTX 등을 증편하고 있다. 철도에 대한 공공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교통시설 예산을 탄소 배출 저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철도 예산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의 철도시설 예산 분담비율을 지금보다 더 상향해야 한다. 또 기존의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주행거리에 따라 부과하는 주행세로 전환하고, 자가용의 혼잡 통행료도 확대해야 한다. 탄소세를 도입해 교통 부문에서 걷은 탄소세 재원을 철도에 투자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철도 등 대중교통에 더 많은 혜택 필요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철도를 포함한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일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 대응책으로 2022년 6월부터 3개월 동안 도시 간 고속열차 등을 제외한 모든 독일 내 대중교통을 월 9유로로 이용할 수 있는 ‘9-Euro-Ticket’ 정책을 시행했다. 무려 5200만장의 표가 팔렸다. 그 결과 물가상승률이 0.7% 감소하고, 탄소 발생 규모가 180만t 줄어드는 등 생계비가 절약되는 다양한 효과를 낳았다. 이 정책이 성공하자 독일 정부는 올해 5월부터 월 49유로의 ‘독일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는 유류세를 인하하고 연휴 기간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자가용 이용자에게만 혜택을 주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1만원 교통패스’를 도입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와 싸우기 위해서도, 정의로운 생태전환과 교통권 보장을 위해서도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높이는 이러한 상상력은 자유로이 분출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가장 가치 있는 SOC 투자는 철도 등 공공교통에 대한 투자이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논쟁에 대한 녹색정치의 대안이기도 하다.
김찬휘 한국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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