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균형의 한국사회[김유찬의 실용재정](27)

2023. 7. 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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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2일 서울시의회 앞 광화문시민분향소에서 폭우참사 희생자 추모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사회가 불평등해지면 사회갈등이 증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회 경제성장의 속도도 늦어진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이후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신지식이다. 여야의 보수정치인과 경제관료들 그리고 많은 이의 두뇌 속에는 그러나 경제성장과 분배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인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한 정도에 대한 국가 비교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최고 상층부에 속한다. 우리 사회의 심한 불평등은 어디에서 연유된 걸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난한 나라에서 자산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던 토지가 사람들에게 분배됐으니 불평등의 기원을 그 시기나 그 이전에서 찾기는 어렵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빠른 성장을 위해 자본축적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불평등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사교육 투자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제 수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경제발전과 함께 자본축적도 이뤘다. 수출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돼 순자본수출국에 속한 지도 오래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말 대외금융자산은 2조1271억달러, 대외금융부채는 1조3805억달러로 해외에 투자된 국내자본이 국내에 투자된 해외자본을 능가하는 수준이 7466억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규모의 자본을 해외에 순수출하는 나라라면 자본축적이 더 이상 경제발전의 관건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자본이 희소한 생산요소가 아닌 이상 그에 대한 가격인 자본재 비용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부족하고 더 희소한 자원인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반대로 높아지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 불평등이 완만하게나마 해소돼 가는 것이 경제 이치로도 자연스럽다. 꽤 오래된 자본수출국이므로 지나간 시기 자본축적의 필요성에 의해 방치됐던 불평등은 이미 어느 정도 해소됐어야 한다. 왜 그렇지 못했을까. 경제의 불평등을 줄여주는 움직임이 한국의 경제체계 내에서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한번 형성된 세력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습성이 있다. 초기에 형성된 자본에 대한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노동자들의 희생은 한국에 공고한 재벌세력을 만들었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선거에 의해 교체되는 정치권력을 자연스럽게 능가하기 시작했다. 경제권력은 기존의 발전방식과 성장으로부터의 독점적 혜택을 유지하고자 했고, 경제정책을 움직이는 정치권력은 이에 봉사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언론과 학계조차 기생세력화됐다. 재벌에게만 유리한 경제정책을 투입하고, 기업과 자본계층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조세와 재정정책을 채택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유지되는 불평등은 많은 이들의 고통, 경제발전에서 중하위계층의 차별과 제외, 전체 경제에는 성장의 저해를 의미한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이를 위해선 긴 여정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열정과 집단지성을 필요로 한다.

한국사회에는 불평등 구조가 공고해지면서 병행해 고착화한 두 가지 사회현상이 있다. 과다한 수도권 집중과 병적인 사교육 투자가 그것이다. 두 가지 사회현상과 관련해 개인들이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도 상이하기에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좀처럼 한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해결책에 대한 소통을 어렵게 하는 배경이다. 한국사회의 깨져버린 균형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기이한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국토 대부분이 저발전 단계에 방치된 상태에서 인구의 역동적인 절반이 좁은 수도권 영역에서 주거와 생업의 고비용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국민은 또한 교통혼잡비용과 제한적 여가생활의 고통을 감내하며 어렵게 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정체가 오래 유지된다는 건 거대한 비용을 초래하므로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인구 및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국민의 자산(부동산) 쏠림현상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비생산적인 부동산투자로의 자원 쏠림은 효율성을 심하게 훼손한다. 결과적으로 전체 경제의 성장과 개인의 평균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최근 국가전략산업이 강조되자 국가가 용인 반도체단지 조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미 국제경쟁력을 갖췄고, 수십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가진 업계에 국가가 나서서 더 특혜를 주겠다는 것도 논리가 없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반도체에 대한 지원이 왜 꼭 수도권이어야 하는가 말이다. 업계에서 인력수급의 문제, 외국인 투자의 문제 등을 거론하겠지만 정부는 파주, 마곡단지 등에서도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이미 많은 후퇴를 했다. 용인까지도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팹리스 인력이 가기는 어렵다고 혹자는 말한다. 무엇이 과연 더 중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반도체단지 조성도 중요한 경제적 목표이겠으나, 국토의 장기적 균형발전이 더 중요하다. 이를 후순위로 두는 건 사안의 경중에 대한 심각한 판단의 오류에 해당한다.

개인 삶을 궁핍하게 하는 것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 문제도 심각하다. 부모들의 소득에서 자녀 사교육비로 나가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저출생의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노후소득보장을 어렵게 해 부동산투자에 목을 매달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 행해지는 사교육이 개인의 인적자원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투자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하는 저소득계층의 자녀들을 입시에서 배제하는 단기적인 목적에서 효율성이 존재할 뿐이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중에서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고교 출신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이는 불평등한 방향으로의 사회변화가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정 대학에서 수학한 연고를 가진 집단이 끌어주기를 통해 사회적 세력을 더 공고히 한다. 그만큼 학력 사회의 병폐는 뿌리가 깊다. 대학입시제도는 2~3년을 가지 못하고 바뀌며, 제도 시행의 기술적인 실수가 정권에 대한 민심의 평가까지 큰 폭으로 좌우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수도권 집중과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의 근저에는 개인들의 경쟁심리와 욕구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개인들의 선택은 대체로 방어적으로 이뤄진다. 수도권에 거주하거나 투자하지 않으면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실제로 과거 수십 년 한국사회의 변화가 충분한 경험적 근거를 제공한 상황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취업 등에서 불리하다는 점도 현실이다. 이에 따른 방어기제로 발휘되는 개인의 선택이 불균형을 더 심화시키면서 다시 부메랑이 돼 개인들의 삶을 어렵고 궁핍하게 만들고 있다. 속히 빠져나가야 하는 국가 사회적 함정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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