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엔 단호, 권익구제엔 소통… 한결같은 원칙맨 [Leadership]
해답 나올때까지 입단속 철저
檢 시절부터 유명했던 ‘자물쇠’
권익위 업무 파악·변화 위해
3주간 법령집 보며 ‘두문불출’
자녀채용특혜 관련 선관위 압박
내달 중 최종결과 내놓을 전망
사격훈련 재개로 갈등커진 포항
직접 수성사격장 찾아 민원경청
국민권익위원회가 달라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여 만에 위원장이 교체되면서 지도부와 구성원들이 손발을 맞춰 모처럼 심기일전하는 분위기다. 31일로 취임 28일째를 맞은 김홍일 권익위원장이 중심을 잡았다. 김 위원장은 28년 경력의 강력·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최근 10년 동안은 변호사로 일했다. 그는 권익위원장이 된 뒤 오전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오후 10시쯤 취침하던 검사 시절의 습관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만큼 긴장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권익위원장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권익위가 공직 사회뿐만 아니라 민간의 청렴 중요성까지 챙기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지에 기대감이 실린다.
◇조직 바로 세우는 선 굵은 리더십 = 김 위원장 취임으로 권익위 조직 안팎에 활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익위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전현희 위원장 시절 현 정부와의 갈등이 이어지며 업무에도 영향을 줘 구성원들의 피로감이 작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권익위의 이런 분위기를 숙지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조직을 바로 세우겠다는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3일 취임사에서도 “권익위 안팎의 불필요한 잡음과 이슈들로 인하여 업무 추진에 적지 않은 지장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조직 내외부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로 인해 직원 여러분들이 겪은 고충과 어려움을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권익위 직원들은 김 위원장의 취임을 반기는 분위기다. 실세 위원장을 맞아 권익위의 기능에 힘이 실리고 조직 위상도 올라갈 것이란 기대가 크다. 김 위원장 스스로가 정식 취임도 하기 전부터 권익위 전체 구성원 숫자를 파악하고 담당 업무를 일일이 살펴볼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권익위원장이 지난 1년 동안 참석하지 않았던 국무회의에도 참석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는가 하면 정부 정책의 방향을 파악해 빠르게 권익위 업무에 반영해 나가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오랜만에 공직을 맡아 의욕적으로 업무에 나서고 있다”며 “권익위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주의자…입 무거워 별명이 ‘자물쇠’= 김 위원장은 임명 후 첫 출근을 하자마자 권익위 법령집을 가져다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권익위 업무의 기본이 법령집 안에 들어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규정과 기준 같은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며 “원칙주의자 다운 면모가 뚜렷하다”고 귀띔했다. 김 위원장은 요즘 권익위 직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패신고에 대한 보안 유지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공익신고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차단해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권익위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나름 대로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사 시절에도 그는 한 번 시작된 수사에 대해선 결론이 나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는 ‘자물쇠’로 통했다.
김 위원장은 권익위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 공부하느라 취임 후 20일 가까이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1일 서울시와 법무부 직원들을 상대로 공직자의 청렴에 대해 강연하는 것으로 첫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행정부처는 국민의 불만을 해결해야지, 불만을 말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직원들로부터 어떤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 가장 처음 하는 말이 “그래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검토된 내용이 있느냐”일 정도다.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섣불리 말하면 안 된다는 게 공직자로서 그의 투철한 소신이다. 그가 자물쇠로 통할 만큼 입이 무거운 것은 그런 까닭 때문이기도 하다.
◇공정·상식 강조…첫발은 부정부패 척결 = 김 위원장은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 10일 정부 지원금 부정수급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하기로 하고 ‘나랏돈 빼먹기’ 근절 의지를 앞세웠다. 윤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 온 정부 보조금 비리 단죄 필요성과 궤를 나란히 하는 행보다. 이틀 뒤인 지난 12일 권익위는 공정 채용 정책 추진 방침을 밝히고 채용 비리 차단에도 나섰다. 정승윤 부위원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채용비리 연루자에 대해선 수사 의뢰, 징계 요구 등 엄격한 조치를 시행하고 채용 비리로 인한 피해자에게는 재시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극적인 구제 노력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거센 비판을 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의 자녀 채용 특혜 의혹에 대해선 선관위를 상대로 자료 제출 기간을 늘려가며 압박하고 있다. 권익위는 8월 중 선관위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다.
그가 요즘 특별히 관심을 쏟는 분야는 부정부패 척결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라고 한다.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는 검사 시절부터 몸에 익은 까닭이고 ESG의 경우 최근 10년 간 변호사로 일하며 관심을 갖게 됐다. 김 위원장은 권익위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 고충처리 또한 직접 살피고 있다. 실제로 사격 훈련 재개 문제로 갈등이 불거진 포항의 수성사격장을 지난 28일 방문해 현지 주민들로부터 직접 민원을 전달받았다. 김 위원장은 권익위가 담당하는 행정심판 업무와 관련, 행정심판 조직의 기능과 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행정심판 통합방안 마련은 윤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은 여러 자리에서 공정과 상식의 확립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권익위가 사회의 관행적인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 혈세 누수 등 비리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고 국민 앞에 인정받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소신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법조인 시절부터 부정부패와 맞서 싸워 온 만큼 권익위를 통해서도 같은 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부패방지 정승윤, 고충·민원 김태규, 행정심판 박종민… 든든한 ‘원팀’
■ 권익위 부위원장 3人
국민권익위원회는 장관급 위원장과 차관급 부위원장 3인 등 총 4인의 지도부 체제다. 김홍일 권익위원장보다 먼저 임명된 부위원장들이 김 위원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검사 출신, 김태규 부위원장과 박종민 부위원장 겸 중앙행정심판위원장은 판사 출신이다. 이들은 경력을 토대로 한 전문성을 가지고 각각 부패방지, 고충·민원, 행정심판 등 업무 영역을 나눠 맡아 실력 발휘에 한창이다.
지난 1월 취임한 정 부위원장은 권익위의 인사 등 내부 살림을 총괄하는 사무처장이자 부패방지 업무를 담당하는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 부위원장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비리 의혹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었을 때 선관위를 강하게 질타해 주목받았다. 조사·수사에 강제권이 없는 권익위 간부가 타 정부 기관과의 정면충돌을 피하지 않는 모습으로 업무 추진 과정에서 돌파력을 보였다. 그는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호탕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0월 임명된 김 부위원장은 고충·민원이 발생하는 전국 각지의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사무실에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2월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퇴임했다. 이후 변호사로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법조계 안팎의 사안에 솔직한 소신을 밝혀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 부위원장은 과감하고 시원시원한 성향이면서도 판사 출신 특유의 꼼꼼한 면모를 지녀 전국 각지의 고충 민원 해결사로 활약 중이다.
박 부위원장은 지난 2월 취임 이후 행정심판 분야를 전담하는 중앙행정심판위원장 역할을 겸하고 있다. 행정심판을 통한 정부 기관 간에 갈등이나 충돌 여지를 최소화하는 데 박 부위원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차분하고 온화한 성향의 박 부위원장은 외부활동보다는 내부활동에 집중하면서 행정심판을 통한 갈등 조정에 전념하고 있다.
尹의 검사시절 멘토… 부산저축은행 수사 ‘호흡’
■ 김홍일 - 윤석열의 관계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직장 상사였다. 2009∼2010년 김 위원장이 ‘거악 척결의 상징’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일할 때 대검 중수 2과장이었던 윤 대통령과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에서 손발을 맞췄다. 김 위원장은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윤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한 조직을 맡아 일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에 상사였던 사람에게 업무를 지시해가며 일하려면 인간적인 호감과 신뢰가 그만큼 두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윤 대통령과 사석에서 형님, 아우 할 수 있는 진짜 측근은 김 위원장 외에 몇 안 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를 자처하는 인사들은 많지만 김 위원장만큼 윤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찾기는 어렵다는 게 관가의 정설이다. 10년이 훌쩍 지나 유력 대권 주자가 된 윤 대통령은 2021년 선거 캠프에서 자신의 검사 시절 멘토였던 김 위원장에게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겨 네거티브 대응을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 일색인 검찰 조직에서 충남대 법학과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윤 대통령 또한 김 위원장의 대쪽같은 성품과 뚝심에 감화돼 오랜 시간에 걸쳐 연을 이어오다 권익위원장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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