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힙스터 감독의 대결 ‘애스터’ vs ‘애스터’
아트 필름 열혈 팬들이 극장에 걸린 두 편의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 이른바 애스터(의 영화) 대 애스터(roid city).
보 이즈 어프레이드,
"어머니,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지만 여러 사정이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일정을 망치는 이유는 외부가 아니라 보 스스로에게서 기인한다. 이러저러한 공격의 발원지는 사실상 보 자신이며, 결국 그가 어머니를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성녀 조각상을 어머니 선물로 고른 보, 축축한 동굴 속을 통과하는 보, 지난한 성적 불구 상태에 놓인 보를 보여주며 마더 콤플렉스(mother complex)를 정면으로 다룬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의 내면에 뿌리내린 어머니의 영향을 각종 증상과 상징물로 드러내고 있다.
가학의 코미디여, 컬트가 되라
그런데도 여전히 아리 애스터의 팬들은 그의 가학적인 가족해체 드라마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미드소마’와 '보 이즈 어프레이드’ 두 편을 놓고 나뉜 양극단의 반응들만 보아도 이제 아리 애스터는 '컬트영화’(소수의 열광적인 팬이 있는 영화)의 신흥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다수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물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히 신선한 감흥이자 보기 드문 야심으로 다가올 법하다.
한국영화의 팬이기도 한 아리 애스터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콕 집어 자신에게 표현할 용기와 영감을 준 영화라 말하기도 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개봉 당시 10만 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했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대표 컬트영화다. 비난과 열광 사이에 놓인 애스터의 영화가 훗날 어떠한 영화로 재평가될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토록 지독한 농담에 거액을 투자한 제작사 A24(‘미나리’를 만든 그 제작사)의 배짱이 남아 있는 한 야심 찬 작가들이 더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애스터로이드 시티, 웨스 앤더슨의 강박 도시
그러나 방금 언급한 내용은 영화 속에서 실제가 아니다. 영화는 사막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나의 연극으로 상정하고, 이 연극을 만드는 무대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영화 내부의 리얼리티로 삼는다. 일종의 극중극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배우들은 이중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웨스 앤더슨은 시네마스코프(2.39:1)와 고전적 화면비(4:3) 또는 파스텔 톤 색감과 흑백 화면을 교차해가면서 영화를 구성해둔다. 과연 이러한 장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가 좋아하는 강박적 대칭의 프레임 내부에서는 다소 작위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보인다. 카메라는 모든 장면에서 입체성을 지워내고, 가로세로의 평면적인 움직임을 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공적인 세계 속에서 숏(shot)의 힘은 빛을 발한다. 인물의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찰나를 표현하는 압축적인 운동감이야말로 숏과 숏이 만나 발휘하는 영화 매체의 본질적인 힘을 곱씹게 한다.
속도감을 주고자 빠르게 휘발되고 남발되는 숏들로 무장한 영화 시장에서 이런 영화를 만나는 일은 몹시 소중하다. 훌륭한 장면이 많지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소개하고 싶다. 사랑의 섬광을 시선의 마주침과 잠깐의 침묵, 지연된 시간의 감각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앤더슨의 분명한 영화적 재능이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나지 못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나지 못해(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는 어쩌면 감독이 강박적인 형식을 통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힌트 같다. 우리는 너무나 진짜 같아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만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라는 환상을 일깨우는 인공적인 장치들을 통해 기꺼이 몰입할 때야말로, 내가 앉은 객석의 현실 감각을 쥐고서 영화가 전하는 몽상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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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스튜디오디에이치엘 UPI코리아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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