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국기 설명 못한 이탈리아 총리…태극기 담긴 뜻은?

남승모 기자 2023. 7. 3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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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첫 미국 방문길에 오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진땀을 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7일(현지시간) 백악관 방문에 앞서 국회의사당을 찾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였습니다. 멜로니 총리가 의회 지도부와 기념 촬영을 위해 나란히 섰을 때 슈머 원내대표가 가벼운 한담으로 "이탈리아 국기는 왜 삼색(초록·하양·빨강)이냐"고 물었습니다.


자국 국기에 담긴 의미를 물은 것이었지만 멜로니 총리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예상 밖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아, 네, 네, 네. 어떤 이유 때문이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라며 결국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이탈리아 매체들은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극우로 분류될 만큼 보수적인 정당의 대표로, 평소 애국심을 강조해 온 것과 배치됐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정부 홈페이지에는 지난 1월 멜로니 총리가 국기의 날을 맞아 낸 성명이 게시돼 있는데 국기가 상징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이탈리아 국기는 국가적 단합을 상징하고, 자유, 연대, 평등이라는 국가 건국 가치를 나타내며, 이탈리아의 비범하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을 구현합니다." (Enshrined in the Constitution, the Italian flag symbolises national unity, represents our nation's founding values of freedom, solidarity and equality and embodies Italy's extraordinary and universally recognised historical and cultural heritage and identity.)


총리 본인 명의로 나간 성명이니 만큼 자신이 직접 작성하지는 않았더라도 읽어는 봤을 테니 멜로니 총리도 이런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다만,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고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일국의 총리가 외교 무대에서 국가적 상징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건 역시나 뼈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극, 4괘…태극기에 담긴 뜻

그렇다면 태극기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태극과 팔괘 중 4괘가 들어 있고 이를 통해 우주 음양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정도가 일반적일 겁니다. 혹자는 태극기를 일컬어 전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게 꼭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상당수 국기들이 단순화한 상징이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하얀 바탕에 붉은 원이 들어간 일본의 일장기나 파랑, 하양, 빨강 3색으로 이뤄진 프랑스 국기 등이 그런 예입니다. 공산권 국가에서는 주로 별이 들어간 문양을 많이 채용했는데 중국의 오성홍기나 베트남의 금성홍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중국 오성홍기에서 가장 큰 별은 중국 공산당을, 그리고 작은 4개의 별은 각각 노동자·농민·소자산계급·민족자산계급을 상징합니다. 붉은 바탕에 큰 황색별 하나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베트남 국기도 의미가 비슷한데, 황색별의 5개 모서리가 각각 노동자·농민·지식인·청년·군인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주재하고 있는 미국의 성조기는 왼쪽 상단에 있는 50개 별이 미합중국을 구성하는 주(州)들을, 그 바탕에 있는 13개의 붉은색과 흰색의 가로줄은 독립선언 당시 13개 주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철학적이라는 태극기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가운데 태극 문양은 붉은색이 양, 파란색이 음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태극은 중국에서 유래한 개념이지만 음양 가운데 각각 점이 하나씩 있는 중국의 태극 문양과 달리 우리 태극기에는 점이 없습니다. 4괘는 건(乾-하늘) · 태(兌-연못) · 리(離-불) · 진(震-우레) · 손(巽-바람) · 감(坎-물) · 간(艮-산) · 곤(坤-땅) 8쾌 중에 각각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를 배치했습니다.

태극기의 철학적 바탕이 중국의 역(易)에서 나온 걸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서양 문화가 그리스-로마 문명에 근간을 뒀다고 해서 현재 유럽과 미국 등의 문명이 모두 이탈리아 문화에 종속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양 문물을 일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알파벳도 따지고 보면 현대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에서 꽃 피웠던 페니키아 문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문화, 문명이란 서로 상호 교류 속에 발전하는 것이고 그런 기원 논쟁보다 우리가 택한 국기, 그 안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바로 알고 새기는 게 더 중요합니다. 비단 정치인이나 관료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멜로니 총리가 받았던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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