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으로 되돌아본 부모와 교사, 그리고 '우리' 아이
마음 아픈 기사가 연일 이어집니다. 교육계의 미투라도 되는 듯 서로의 질책과 상처내기가 연일 이어집니다. 의외의 문자 한통을 받았습니다. "서이초 사건을 기사로 접하고 제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동안 함부로 선생님들을 대한건 없는지, 걱정이 됩니다"라는 의미의 문자였습니다. 누군가는 또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제 생각을 조금 정리해 남겨봅니다.
서이초등학교의 일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현직 교사의 한 사람으로 마음 한켠을 무척 무겁게 합니다. 그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자 한통을 받습니다. 혹시나 알게 혹은 모르게 선생님들에게 실수한 것은 없는지 걱정되는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나 교사들에게 모두 모범이 되는 부모님의 문자였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예민함으로 교사들에게 불편을 주는 부모는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오히려 이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민간어린이집이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개원한 탓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없음을 '공동육아'의 형태로 전향해 운영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한 듯합니다. 한 명보다는 다수의 지혜가 더 좋을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하고, 상의하고 협력합니다. 부모의 완전함도 거짓임을 알고, 교사의 완전함도 교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늘 힘을 합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던진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왜 교사와 부모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요?
저는 유아교육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문제의 답을 '보육'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언젠가 초등선생님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초등에 올려보내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위한 자리였지만 행사를 주최한 기관의 장 역시 궁금함이 무척 많았답니다. 왜 잘 키워낸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지, 어렵게 성공한 배변지도의 효과를 학교에서는 발휘하지 않고 꾹 참고만 오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간담회전에는 초등교육의 무성의함에 불만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물고 빨며 키워낸 내 아이같은 아이들에게 왜 초등 선생님들은 우리만큼 사랑해주지 않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 말입니다.
초등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1학년 담임때 가장 어이없는 학부모의 부탁은 어떤것이었을까요?" 선생님의 답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우리 아이 가방에 약 들었으니까, 급식 후에 약 먹여주세요'였어요." 선생님의 대답에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약을 먹여주는 것, 어린이집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초등에서는 그것도 1학년 담임인데 그게 놀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물의 오남용을 막기위해서라도 교사의 관리 감독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말입니다. 선생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왜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기 관리 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지, 밥을 먹고 나서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으라고 가정에서 일러주면 되는 일인데, 하루 안 먹고 집에 왔으면 가방을 확인하고 먹는거라고 잊지 않는 법을 다시 상기시켜주는게 자기관리에 대한 가정교육인데, 이런 책임까지 학교로 미루고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아, 그럴수 있겠구나...'
마냥 어리게만 봐왔던 아이들이, 그리고 여러가지 평가제며, 부모모니터링이며, 시청에서 나오는 지도점검이며 컨설팅들이 '어린이집'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내는것 보다 '안전하게' 보육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이 그러했습니다. 첫 평가 때 걸레받이 모서리가 둥글지 않다고 모서리마다 보호대를 붙이라고 조언해줬던 사설 컨설팅을 잊지 못합니다. 연두색 걸레받이에 맞는 두께 1cm도 안되는 모서리 보호대를 구할 수 없어, 접착펠트지를 잘라 붙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 컨설팅을 받고 적지 않게 분노했었습니다. 넘어져서 여기 부딧혀 이마가 찢어질 아이가 있다면 교사의 할 일은 조심해서 걷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닌가 아이에게 무해한 환경이 아이를 과연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교육적 의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첫해 평가에 긴장한 선생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탓에 어린이집의 걸레받이 위에 연두색 펠트지가 잘려서 씌워지는 웃지 못할 일을 겪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교권이 무너지게 된 첫 단추는 어린이집의 교육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방침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보육과 교육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육, 이것은 보육 구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아이들을 키워내며 서서히 스스로 날개짓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태에서 무능한 교육부처럼 같은 일이 비일비재한 이 어린이집 현장에서도 보건복지부와 시청은 무능하기만합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기관으로 발생하는 민원 발생을 최소화 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볼 때마다 인간사의 환멸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비율을 볼 때 과거에는 현저하게 어린이집 재원생이 많았습니다. 보육의 국가 책임제를 외친 시기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은 새마을 유아원부터 놀이방의 시절을 거쳐 민간의 영역에서 자생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야 말로 '서비스직'에 아이들이 맡겨졌습니다. 그 편한 보육서비스를 이용하던 습관에 젖은 부모들이 어린이집에서 보이던 갑질인지 모르고 보이던 갑질의 행태, 어린이집에서의 서비스의 요구를 학교에 가서 그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라고 왜 스스로 날개짓하는 새로 아이들을 날려보낼 준비를 하고 싶지 않을까요? 할 수 없습니다. 이리지러 민원과 부모의 요구, 게다가 줄어드는 출산율 때문에 한 명의 아이가 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현실에서는 교육을 위해 바른소리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장님이 생각하는 해법은요?
어린이집에서부터 보육과 교육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담겨야 합니다. 교사가 교실에서 하고 싶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원장의 지지와 조력이 필요하고 어린이집 원장이 자신의 교육 철학대로 원을 운영하려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한 명 한 명의 원아가 운영비가 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부모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게 운영이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구조에서부터 바른 보육과 교육은 시작됩니다.
아이들의 생애주기를 함께 보는 협력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우리원의 경우 자체적으로 인맥을 동원해 매년 초등교사와의 간담회를 만들어 내고 부모들을 교육시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교육부와의 협력, 무척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인맥이 아니라 기관간 협력을 통해 초등학교의 교육과정과 초등학생들을 발달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합니다. 교사와 부모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막연한 그 날개짓을 가르치는 일을 어떻게 교실에서 녹여내 아이들을 키워낼수 있을지 부모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게 방임이나 학대가 아닌 '교육'이라는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대'를 정의하는 규정이 부모과 교사가 상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교사와 학부모간 갈등의 시초가 됩니다.
더구나 출산율의 급감으로 다자녀가 줄어들고 있어서 상급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곳이 맘카페 등 익명의 그늘에 가려져 올바른 정보제공보다 정서표출의 쓰레기장으로 변질된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쯤되면 또 하나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래서 기관에서 부모교육을 잘하면 된다고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교육에 참여하는 부모들을 보세요. 다 자녀에게 관심이 있고, 바른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들만 참여합니다. 민원이나 불만 표출은 그렇지 않는 부모에게서 대부분 발생합니다. 그 분들에게 '교육'이 닿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집단부모의무교육입니다. 최소한의 부모다움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국민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등교육과정에서든 대학에서든 의무교육으로 포함시키는 것도 필요하고, 또 결혼 후에도 부모교육은 분명 필요합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포괄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으면 좋겠지요.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아이에게 혹은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양육수당이니 아동수당이니 보편적 복지의 이름으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도 소소한 지원이 이뤄집니다. 이런 복지의 권리를 누릴 때, 부모의 의무도 함께 포함시키자는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부모교육을 받은 사람만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캠페인입니다. 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공익광고의 제작이나 다큐 등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슈화되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교육과 인간존중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것. 온 세상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저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부모의 불만가득한 개인적 요구가 있으면 늘 즉답을 피하고 익명을 전제로 공론화 합니다. 운영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건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부모위원과 교사위원 모두에게 질문합니다. 민원인의 담임교사가 아니다 보니 교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고, 또 부모들의 입장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건의를 수용할 것인지 아닌지 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초등 교사와의 간담회 이후 일곱살 반 아이들은 스스로 약을 꺼내고 점심시간에 가지고 오면 먹이겠다, 그렇지 않으면 약이 든 채로 그냥 갈 수 있을 것 같으니 교사의 무심함 혹은 업무태만으로 보지 말아달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전원 일치로 합의되어 그 달부터 졸업할 때까지는 아이들이 스스로 약이 있는 날은 약을 꺼내 먹어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규정상 부모가 투약의뢰서를 작성해오면 무조건 교사가 먹이고 확인을 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변에서 기생충이 나왔으니 어린이집에서 일괄 기생충약을 구입해 지급해야한다'는 다소 황당한 의견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의견 역시 운영위원회에서 다뤄졌고, 대부분의 부모는 어린이집에서는 날 것을 거의 먹지 않으니 개인적인 식습관의 문제를 어린이집에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니 각자 가정에서 구충제를 구입해 먹이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으로 합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의사결정 구조가 싫어 원을 옮기는 일부의 부모들도 있습니다. 원을 떠나면서 제 앞에 대놓고, 이 어린이집은 '갑질'을 할 수 없어 불만이라는 표현도 들어봤습니다. 언제 부턴가 '갑'과 '을'로 정의되는 이 사회가 무척이나 싫습니다.
부모와 교사의 관계는 '동(同), 행(行)'의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이, 교사, 부모는 한배를 타고 노를 젓는 관계입니다. 목적지가 다르면 배는 전진하지 않습니다. 제자리를 머물겠지요. 심한 경우에는 전복될 수도 있습니다. 목적지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누구도 목적지로 항해할 수 없습니다. 속도는 느려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삶은 사는 동안이 내내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반대방향으로 노를 젓는 부모는 마음이 힘듭니다. 노젓기를 잠시 멈추고 목적지부터 같은지 확인해야합니다. 부모가 반대방향으로 노를 저어도 아이들과 교사의 합의가 잘 이뤄진다면 바르게 키워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스승이 아이가 처한 가정환경, 부모와 상관없이 훌륭하게 성장시키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간혹 노젓기를 멈춘 부모도 만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부모들입니다. 아이를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부모 역시 교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쉼은 필요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부모에 대해 교사의 분노도 멈춰주세요. 그들은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요? 부모의 시기는 길고, 유아기가 적성에 맞는 부모, 초등학령기가 적성에 맞는 부모, 혹은 성인기, 혹은 같이 늙어갈 노년기의 부모가 적성에 맞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아교사, 초등교사, 중등교사를 선택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짧은 교사의 식견으로 함부로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를 갈라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곳을 향해 함께 동행(同行)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봅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작은 글이지만 세상이 바뀌길 바라보는 마음을 담아 봅니다.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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