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머리고지 지킨 佛 용사 입은 군복 한국인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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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281m)는 프랑스 참전용사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2년 10월 중공군이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동시에 노리고 총공세에 나섰다.
또 6·25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중공군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둔 지평리 전투(1951년 2월)를 언급하며 지평리전투기념관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지원과 지속적 관심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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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프랑스군 희생 잊지 않기를…"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281m)는 프랑스 참전용사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또다른 격전지 백마고지 남서쪽 3㎞ 지점에 있는 이 고지를 놓고 1952년 10월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국군 및 유엔군과 중공군 간에 처절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고지 방어 임무를 맡았던 프랑스군은 엄청한 희생을 치른 끝에 중공군을 물리치고 이 땅을 지켜냈다.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2년 10월 중공군이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동시에 노리고 총공세에 나섰다. 당시 화살머리고지 방어 임무를 맡고 있던 프랑스군은 열흘 가까운 전투 끝에 중공군을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하지만 대대급 규모의 프랑스군은 전사 47명, 부상 144명이란 엄청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1926년 러시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가브릴로프 중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 인도차이나에서도 복무하는 등 경험이 풍부한 군인이었다. 6·25전쟁 도중인 1951년 12월 자원해 한국 전선에 투입됐다. 화살머리고지 전투가 시작된 1952년 10월6일 숫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적탄에 머리를 맞고 산화했다. 프랑스 정부는 고인에게 1계급 특진과 레지옹도뇌르 훈장(5등 기사장 슈발리에)을 추서했다.
프랑스군은 6·25전쟁 당시 3개 대대 약 3500명이 교대로 참전해 전사 262명, 부상 1008명, 실종 7명 등 1289명의 사상자를 냈다. 규모가 작다 보니 미군 사단에 ‘프랑스 대대’란 이름으로 배속돼 싸웠다.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프랑스 대대를 지휘하기 위해 스스로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낮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평리 전투와 달리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의 프랑스군 활약상은 아직까지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19년 화살머리고지에서 프랑스 참전용사 고(故) 이브 모알릭 상병의 인식표가 발굴돼 67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화살머리고지에는 아직 찾지 못한 프랑스 장병 유해 3구 이상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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