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더 영화같네요.”...30년만에 뭉친 ‘백 투 더 퓨처’ 출연진
파킨슨병 앓는 마이클 J 폭스 재단 후원 위한 경매 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등 제작진도 한 자리
웨어러블 기기, 태블릿 PC, 지문인식 장치... 1985년 1편이 개봉한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 3부작 ‘백 투 더 퓨처’에 소개된 30년 뒤 미래 풍경의 일부다. 디테일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래도 있다. 이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를 연기해 단숨에 지구촌 하이틴 스타로 떠오른 마이클 J 폭스(62)가 파킨슨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는 것, 그럼에도 그는 동료 파킨슨 환자들을 위한 자선재단을 설립하며 인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 시대의 고전으로 사랑받은 ‘백 투 더 퓨처’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른다는 것 등이다.
이 예측불가능했던 사건들이 영화 바깥 현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줬다. 2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백 투 더 퓨처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브로드웨이에서 개막을 앞둔 뮤지컬 버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38년전 영화를 만들고 영화에 출연했던 사람들까지 총출동했다. 이날 주인공은 38년전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마티 맥플라이’ 마이클 J 폭스였다. 32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구부정한 모습으로 힘들게 걸음을 옮겼지만, 눈빛만큼은 80년대 중반 하이틴 스타처럼 똘망똘망했다. 영화에서 마티와 함께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신나게 타임슬립 어드벤처를 펼친 괴짜 과학자 브라운 박사 역할을 맡은 크리스토퍼 로이드(85)도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티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리 톰슨(62)도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각각 마티와 브라운 박사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케이시 라이크스(21)와 로저 바트(60)가 참석한 것은 물론이다. 영화 메가폰을 잡았던 할리우드 히트 제조기 로버트 저메키스(71)와 총괄 프로듀서였던 스티븐 스필버그(77)까지 나타났다. 이 뿐만 아니다. 영화만큼이나 경쾌하고 신났던 주제가 ‘사랑의 힘(Power of Love)’를 불렀던 록 그룹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메인 보컬 휴이 루이스(73)가 어찌 빠지겠는가. ‘사랑의 힘’은 빌보드 1위를 비롯해 캐나다·일본·호주 팝 차트를 석권하고 이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의 후보까지 올랐다가 라이오넬 리치의 ‘세이유 세이 미’(백야 주제가)에 아쉽게 고배를 들었던 노래다.
영화의 메가톤급 히트로 각자 화려한 인생을 보냈던 이들이 의기투합한 까닭은 이들이 뮤지컬 제작에 공동으로 투자했기 때문이 아니다.(저메키스 감독은 창작진에 이름을 올렸다.) 그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만 모인 것도 아니다.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은 주인공은 폭스다. 뮤지컬 개막 축하행사가 그가 운영하고 있는 파킨슨병 연구를 위한 마이클 J 폭스 재단의 후원행사를 겸해서 열렸다. 이날 경축행사의 대단원이 마이클 J 폭스 재단 후원 경매였다. 영화에서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과거와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던 타임슬립 머신 ‘들로리언’ 등 추억의 물품등이 경매에 나왔다. 이날 경매수익금은 파킨슨병 연구 지원금으로 활용된다.
1985년 할리우드 최강의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이 내놓은 야심작 ‘백 투 더 퓨처’가 흥행대박을 터뜨리면서 캐나다 밴쿠버 출신의 스물 네 살 신예 폭스도 전세계 소녀팬들을 열광시키는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뒤이어 제작한 백 투 더 퓨처 2·3편도 1편 못지 않은 성공작이 됐고, 폭스는 안방극장과 영화계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며 할리우드 초대형 스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미드 ‘패밀리 타이스’에서 함께 연기했던 한 살 연상의 여배우 트레이시 폴란과 스물 일곱 이른 나이에 결혼해 이듬해 첫 아들을 낳았다. 배우 경력과 가정 생활 모두 이보다 더좋을 수 없었던 그에게 돌연 불청객이 찾아왔다. 영화 ‘할리우드 박사’를 한창 촬영하고 있던 1991년 폭스는 손가락이 떨리는 증상을 겪었다. 경미한 신경관련 증상인줄 알았지만, 의사의 입에서 나온 병명은 ‘파킨슨병’이었다. 파킨슨병 환자의 10~20%는 쉰살이 되기 전에 증상을 경험하는데 이를 ‘영 온 셋’이라고 부른다. 그가 ‘영 온 셋’이었던 것이다.
그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미국 배우조합상 등을 잇따라 수상하며 하이틴 스타에서 연기파 중견배우로 순조롭게 변신하는 듯 보였다. 그 사이에 쌍둥이 딸도 태어났다. 그러나 날로 악화된 몸 상태는 이제 연기는커녕 정상적인 생활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첫 진단을 받고 8년이 지난 1999년 폭스는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연기를 그만뒀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딴 ‘파킨슨병 연구를 위한 마이클 J 폭스 재단’을 출범시켰다. 이 재단을 통해 파킨슨병 연구 및 후원활동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창립후 지금까지 모금해 연구자들에게 지원된 후원금만 17억5000만 달러(약 2조2365억원)다. 이 재단의 활발한 연구 지원 활동 덕에 인류는 최대 난적인 파킨슨병과의 싸움에서 조금씩 그러나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
폭스의 몸은 투병으로 수척해지고 야위어갔지만, 오히려 활동범위는 늘어났다. 다큐멘터리, 책, 인터뷰를 통해 변화된 삶 속에서 어떻게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는지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한동안 주춤했던 상복도 터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자서전 ‘언제나 위를 올려다본다(Always Looking Up)’의 녹음본이 그래미상 최우수 오디오북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에서 의학기술의 발전과 인도주의에기여한 공로로 상 또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오스카를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에서 인도주의를 실천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진허숄트 인도주의상도 받았다.
그를 세상에 알린 출세작 ‘백 투 더 퓨처’의 뮤지컬 버전은 1편 영화 플롯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신나는 주제가 ‘사랑의 힘’ 등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수놓았던 80년대 흥겨운 록음악들이 대부분 뮤지컬넘버로 활용됐다. 2020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초연했고, 이듬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개막했으며, 2년만에 세계 뮤지컬의 수도인 뉴욕 브로드웨이로 입성했다. 현재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 극장에서 프리뷰 공연중이고, 정식 개막은 오는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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