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 10개 중 2개는 규제입법…"졸속입법 줄이고 품질 높여야"

김기덕 2023. 7. 3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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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 인터뷰[만났습니다①]
"허술하게 법률 만들어 해외에 비해 위헌 넘쳐"
"시행령적 발상인 청부입법 사례는 위험한 발상"
우선 규제법에 입법영향분석…"추후 확대 가능성도"

[이데일리 김기덕 김범준 기자] “우리나라에서 법률을 만들 때 사회·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영향 등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했다면 그동안 예산을 수백조 원은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법에는 예산이 따라오기 때문에 필요없는 돈이 새 나가지 않도록 이제라도 철저한 입법영향분석을 통해 졸속 입법을 막고 입법 품질을 높여야 한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입법을 제외한 의원 입법으로 발의됐던 현행법이 현재 총 1600여 개가 되는데, 문제는 너무 허술하고 쉽게 법이 만들어지면서 규제 법안이 전체의 20%에 달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라면서 “여야가 대치하는 쟁점 법안을 두고 제대로 법적 정합성이나 체계성을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만들어진 후 결국 위헌법률로 판정받는 사례도 외국에 비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 (사진=방인권 기자)
박 처장의 지적대로 헌법재판소 통계를 보면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위헌법률은 342건에 달한다. 헌법 소원을 통한 위헌 결정, 헌법 불합치 법률을 따지면 이 숫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제21대 국회가 시작된 2020년 이후로는 현재까지 국내 위헌법률은 58건으로 미국(14건), 일본(1건) 등에 비교해도 훨씬 많은 수준이다.

박 처장은 국회의원들이 ‘일단 통과하고 보자는 식’으로 법을 쉽게 만드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작심 비판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각 당에서 이름이 있는 분들과 힘이 없는 분들이 낸 법안은 각각 입법 추진 속도나 진행 과정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며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이 2만3000여개에 달하는데, 논의되지 못하고 계류 중인 소위 ‘낮잠 자는 법안’이 많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입법 절차나 규제심사가 비교적 간단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을 통해 청부 입법을 하는 것을 두고는 “일단 법을 통과시키고 시행령을 갖다 붙이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시행령적 발상으로 법을 만드는 것은 위법 소지가 많고 헌법의 정신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해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이르면 연내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처장은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입법안에 대한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입법조사처가) 우선 규제법률에 한해 분석을 실시하게 될 것”이라며 “더 좋은 법률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역할을 다해 입법기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사진=방인권 기자)
다음은 박 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법률안 사전 영향평가분석 제도가 규제영향분석, 입법영향분석으로 혼용해서 불린다. 정확한 명칭은.

△입법부로서 국회의 정체성과 가치를 표명하고, 정부가 하위 법령·행정 규칙을 주요 대상으로 시행하는 규제영향분석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입법영향분석으로 정했다. 법률안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반적인 영향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예측·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법안 분석이 어떻게 이뤄지게 되나.

△일단 분석 대상은 규제법률안으로 한정한다. 다만 향후 법안 논의 과정이나 제도 시행 이후 비규제법률안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기존 비용추계서를 내야 하는데 여기에 입법영향분석서가 추가로 첨부되는 것이다.

-현재 입법영향분석 제도 관련 여야에서 국회법 개정안 6건이 올라와 있다. 여야 간 이견은 없나.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산업·경제·문화·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다만 민주당이 두 가지 사안을 지적하며 약간 소극적이다. 그 첫 번째는 규제 법률에 한정한다고 해도 법적으로 분석서를 의무 조항으로 넣을지 여부와 또 다른 사안은 추가 연구분석을 위해 시범사업을 연장하자는 것이다.

-두 사안을 두고 여야 협의가 가능한 상황인가.

△우선 입법영향분석서를 의무 조항, 강행 규정으로 둘 필요는 없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의원의 긴급한 법안 발의가 필요할 경우 조사처에 분석서 작성을 요구하고, 조사처는 이를 작성해 해당 의원에게 전달하면 된다. 또 입법영향분석은 10년 동안 조사처에서 시범사업을 했고 최근 사업단, 자문위도 꾸려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조만간 입법영향 분석을 한 법률 샘플을 만들어 국회 운영위에 전달하기로 했다. 여야도 이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상황이다.

-어떤 법안에 대해 입법영향분석을 했는지.

△작년에 주거급여법을 비롯해 6건에 대해 사후입법분석을 해 봤다. 21대 국회 들어와서는 게임 강제적 셧다운제(게임산업진흥법 및 청소년보호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을 살펴봤다. 지금 상임위별로는 타다금지법 등을 시행했던 국토교통위원회를 비롯해 환경노동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규제가 많은 편이다.

-분석서 제출이 강행 규정이 아니면 실제 효과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미 예산이 필요한 법안에 대한 비용 추계서와 똑같은 방식(필요할 경우 요구서 제출)으로 진행하고, 더 나아가 그것마저도 국회의원들이 부담되면 규정에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을 수 있다. 쟁점 법안이 해당 상임위원회에 넘어간 이후 전문·객관·과학적인 심사 근거를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조사처는 한 달에 법률 150~180건에 대해 각 의원 요구로 약식 입법분석을 하는데 그것 보다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라 보편화 될 것으로 보인다.

-시급한 법률에 대한 적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분석서를 제출하거나 요구해도 그 기간이 짧게는 15일, 길어도 한 달 안에는 끝낼 수 있다. 특히 요구서를 내면 일단 법률이 국회 의안과로 넘어가고 사후에 분석서를 장착할 수 있다. 법안 발의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21대 국회 들어 의원입법 비중이 전체 97%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이 비중이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 문제는 법안 발의가 많은 것도 그렇지만 졸속입법이 가장 큰 문제다. 의원 입법을 통한 현행 법률이 1600여개인데 현행 법이 3000개로 늘어나는 것 보다 졸속 입법이 문제다. 입법안을 낼 때 다른 법과의 관계도 보고, 규제 여부, 사회·경제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부분을 사전에 심의해야 한다.

-현재 여야가 대치하는 쟁점법안인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에 대해서도 입법영향분석이 가능한가.

△확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분석서가 도입, 체계적으로 활용되면 확실히 효능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잘 만들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의원들의 불필요한 정쟁도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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