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4시]정전체제와 현상유지

윤정훈 2023. 7. 3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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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가치연대 통한 ‘공동안보’ 강화 논리
종전선언 추진 정치세력 ‘반국가세력’ 몰아
현상변경 어려워…北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귀결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지구상에서 70년동안 끝내지 못한 전쟁은 한국전쟁이 유일하다. 정전협정 아래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세계최강의 한미동맹을 결성한 미국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개입으로 ‘남조선해방’에 실패한 북한은 미군철수를 남조선해방의 전제조건으로 인식하고 적화통일의 ‘중심고리’(관건)로 미군철수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주한미군이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지만 남한의 북침도 억제할 수 있다고 보는 ‘이중억제, 이중봉쇄’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정전과 함께 냉전이 진행되고 휴전선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치열한 대치점이 됨으로써 한미동맹은 공산세력의 남진을 막는 반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불안정한 정전체제에서 한국이 오늘과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군사안보적 지원과 경제적 유무상 원조의 도움이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제3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이다.

한미동맹은 중국, 러시아, 북한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했다. 미·중 사이의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북중러와 한미일 사이의 ‘신냉전’ 기류가 나타남에 따라 한미동맹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실상 미·중의 국제전으로 비화됐던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한반도가 다시 미·중 전략경쟁(패권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들어 감으로써 난관에 봉착해 있다.

한때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고 균형적 실용외교를 펼치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실리를 챙겼지만, 이제는 전략적 명확성을 내세우고 규범기반질서에 편승하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경제적 실리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가치연대를 통한 ‘공동안보’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편에 설 수밖에 없다며 양자택일의 흑백논리를 펴는 것과,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독선적 정의관’은 정전체제에서 산생된 인식구조로 볼 수 있다. 정전이 장기화하면서 우리들의 인식구조에 적우(敵友)의 흑백논리가 독선적 정의관으로 자리 잡고 있어 쉽게 타협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구조는 남남갈등과 정쟁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한미동맹에 의존한 정전체제의 장기화는 분단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는 기득권층을 만들어냈다.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유지세력은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정치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았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정치선언으로 평화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뢰구축 조치의 일환이다. 한국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단기간 내 평화협정 체결이 어렵다는 현실인식이 반영된 것이었다. 실제 노무현 정부 시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해 단초를 제공했다. 북한이 핵개발의 동기를 한국전쟁 때 형성된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으니 종전선언으로 핵포기의 명분을 주자는 것이었다.

2007년 10·4선언에서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할 때만 해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지금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고 한미가 확장억제력 실행력 강화로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 종전선언 추진 등 현상변경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의 현상유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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