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강경책은 핵무기 늘렸을 뿐…이대론 대화 성공 못해”
정전 70년, 커밍스 교수에게 듣는 한반도의 미래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돌(7월27일)을 맞았지만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못한 가운데 북핵을 둘러싼 충돌의 우려는 최근 급격히 고조됐다.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인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을 답습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압박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수십년간 ‘북한 붕괴론’에 터잡은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에 1권이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이 지난달 2권까지 완역돼 재출간된 것은 그만큼 한국전쟁이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전 70돌을 맞아 남북한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거나 서로에 대한 강한 적의를 표현했다.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전쟁에 대해 누구보다 깊에 연구한 학자로서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도 관계 정상화에 관심이 없다. 그런 가운데 북한-중국-러시아, 한국-미국-일본의 결속이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미-러 관계가 매우 안 좋은 상황은 남북관계를 더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의 결과는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쌓아놓게 만들었고, 이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비관적이다. 미래에는 서울과 워싱턴 양쪽에 북한과의 관여에 관심이 있는 대통령이 집권하기를 바란다.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한·미에 진보적 대통령이 집권하는 게 이상적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을 집필한 지 40년이 넘었다. 그 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했다. 당신이 예상한 한반도 역사 전개의 방향은 어떤 것이었나?
“냉전 종식 뒤 두 개의 한국(남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머리를 쥐어짰다. 내 책이 널리 읽혔기에 질문도 많이 받았다. 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지 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 때문에 비판도 받았다. 처가 식구들 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커밍스 교수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한국인들은 수천년간 주로 왕조와 군주제라는 정치 체제 아래에서 살아왔고,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긴 기간 중 하나다. 북한 주민들은 군주제, 일본의 지배, 족벌 왕조 외에는 경험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개탄스럽다고 말한다고 해서 북한에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난 북한, 북베트남, 중국은 동유럽과 달리 소련이 지도하지 않은 반식민지 혁명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설명해왔다. 동유럽 정권들은 스탈린에 의해 이식됐다. 고르바초프가 동독의 민주화를 용인했을 당시 동독에는 소련군 40만명이 있었다. 북한은 소련의 복제품이 아니다. 미국 정보 당국도 (동유럽 사례를 보고) 완전히 잘못된 추정을 해왔다. 존 도이치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995년에 북한이 붕괴할지가 아니라 언제 붕괴할지가 문제라고 했다. 그로부터 48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군 수뇌는 한국전쟁이 또 일어날지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가 문제라고 했다. 이는 미국의 정책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축약해 보여준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뒤 남북관계는 악화되기만 했다.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고 강화와 미사일 발사 등이 결합된 문제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북한을 다루는 방법은 강경하게 나가고 적대적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본 전임자들을 따르는 보수적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은 한국 사람들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은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과 더 관련이 있다고 본다.”
―북한의 올해 정전협정 70돌 행사에는 중국 대표단뿐 아니라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도 참석했다. 신냉전을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전쟁은 냉전 초입에 발발했다. 이런 상황을 얼마나 우려해야 하나?
“아주 중요한 상황 전개다.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에 갔다는 소식에 놀랐다.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이기도 하고, 관계가 어려웠던 2014~2015년을 거친 뒤 북한과 훨씬 가까워진 상태다. 미국이 중국에 적대적일 때 북한에도 적대적이라는 것은 거의 물리 법칙 같은 것이다. 러시아·중국·북한·이란은 밀착하면서 4자 반미 정권 연대를 형성했다. 중·러가 제재 이행에 진지하지 않게 된 것은 북한에 숨 쉴 공간을 제공한다. 냉전 때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런 상황은 두 개의 한국 사이에서 긍정적 사건이 일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제 조건 없는 대화’만 강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반복이라는 지적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화 재개가 가능할까?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총기 규제 협정을 추진하자고 해놓고 ‘난 당신네를 겨누는 기관총 5만개를 갖고 있을 테니 당신네는 기관총을 없애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폭격기나, 최근 핵무기를 채우고 부산에 기항한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호 등으로 북한을 계속 위협해왔다. 그런 상태에서 대화가 성공할 가망이 없다. 바이든이 재선한다면 보다 건설적인 대북 정책을 펼 수도 있다고 본다. 어제 시그프리드 헤커(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미국 핵과학자)와 콘퍼런스에 함께 참여했는데, 상원에 북핵에 대해 브리핑했을 때 얘기를 했다. (상원의원이던) 바이든이 다가와 두 시간 동안 북한에 대해 얘기했다고 하더라. 지금은 대선이 다가오니까 북한과 새로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대북 정책이 어떻게 될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의 재집권을 기대한다고 보나?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만나 매우 기뻤을 것이다. 난 트럼프가 어떤 현직 대통령도 하지 않은 일을 한 공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보좌진은 오찬도 취소하고 떠났다. 이는 매우 굴욕적이었고, 빈손으로 평양으로 돌아가는 김정은을 아주 어렵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화요일에는 이렇게 말했다가 수요일에는 반대로 말하는 변덕스러운 인물이라 예측이 매우 어렵다. 트럼프의 최대 장점은 워싱턴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난 그가 재선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김 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주요 행사장에 잇따라 대동한 것으로 미뤄 딸을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나?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그냥 세계 여론과 한국 여론을 갖고 노는 것일 수 있다. 난 김정은이 수십 년은 더 집권할 것으로 본다. 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 같은 보수적 왕조에서는 아들이 승계할 것으로 본다. 한국인들이나 많은 미국인들은 듣기 싫은 소리이겠으나 김정은이 우리 두 사람보다 오래 살 것이다. 아, 당신보다 오래 살지는 모르겠다.”
―당신은 한국의 분단과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해왔다. 또 한 사람의 미국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미국이 이런 역사적, 도덕적 책임과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분단시켰다는 엄청난 책임을 안고 있다. 이와 함께 내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미군정이 일본을 위해 일한 민족 반역자들을 특히 경찰과 군대에서 재고용한 것이다. 난 한국전쟁에 관한 책에서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를 다룬 장을 통해 시나리오 3개를 제시했다. 이 장의 결론에서는 자꾸 한 가지 답을 얻으려는 질문을 던진다면 두 개의 한국은 절대로 화해할 수 없으며, 그것은 두 개의 한국과 미국, 소련, 중국이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에는 검열이 있었고, 미국은 가장 억압적인 시기인 매카시즘의 시대였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진상이) 알려지지 않은 전쟁이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 언젠가 통일의 기회도 넓어질 것이라고 본다.
―지난달 <한국전쟁의 기원>이 한국에서 완역돼 다시 출간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책 2권이 마침내 한국어로 훌륭하게 번역돼 매우 만족스럽다. 하나의 책이 1981년에 출간되고, 책의 2권이 1990년에 출간되고, 그것들이 2023년에 번역돼 다시 출간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내가 이 책에서 다루려고 한 질문들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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