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문학은 문학만이 아니다

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2023. 7.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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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문학이 항상 자신의 옆자리에 눈길을 두어야 하는 예술 장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이 망각이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데, 가령 예술이 비예술적인 것에 대해 보여주는 배타적 태도 같은 것이 그렇다. 도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혹은 공업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문학 논의를 경직시키거나 제한한다는 식의 주장이 그렇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모든 예술은 비예술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또 그 자신 비예술로 규정되기도 한다. 한때는 논어(論語)가 문학이었고 소설은 문학이 아니었다.

논어와 문학의 경우는 한 존재의 운명이 극적 반전을 보여 주는 사례에 해당하지만, 세계 속의 존재가 자신의 경계를 자신 너머의 존재와 비스듬히 엇갈려 겹쳐 놓는 경우는 매우 많다. 소월의 시는 전통 음률을 근대적으로 변형시킨 것이고, 산사 대웅전 외벽의 동자승이나 흰소의 그림은 세계의 진리를 상징하는 불교 서사를 집약한 것이다. 상식적인 일처럼 보이겠지만, 인간의 운명을 핵심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상식이다.

이렇게 세계의 모든 사건들과 사물들이 상호 관계의 그물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진실이다. 소설가가 그림을 그리고 시인이 작곡을 하는 일은 어쩌면 인간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가장 깊게 드러내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때 그것들은 죽은 것이거나 최소한 자기 파괴로 향하는 존재들이다.

이 관계의 그물망을 망각하는 일은 물론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서져 비워진 세계에서 새로운 것들이 태어날 수 있듯이 망각 이후에 신생이 가능한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나 사물들은 이미 망각을 통해 그 내부에 다른 사건으로서의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다시 불러오거나 미리 당겨온 행위들의 결과라고 해야 한다. 망각은 때로 다른 존재가 되는 기적적인 사건이다.

물론 모든 사건과 사물은 자기 자신을 그 자신이도록 하는 요인들을 갖는 게 기본이다. 문학은 문학이고 음악은 음악이다. 미술관을 문학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자기정체성이 있어야만 일의 중심이 잡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도 밥도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서 그렇지 않은 상황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죽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있고, 밥으로 죽을 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외부의 간섭이나 개입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반대로 예술이 자신의 옆자리에 눈을 돌리지 않을 때 한치도 자신의 외부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이 태도야말로 경쟁적 자리다툼의 원인이 된다. 대부분의 자리다툼은 이런 배타적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비단 예술 영역 만의 일이 아니다. 20세기의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침략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민족적 배외주의의 정치적 표현이고, 신생독립국가의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 운운하면서 독재 정치를 일삼았던 것도 바로 자기 중심적 사고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자기 경계를 넘는 타자 배려는 세계를 예술적으로 변신시키는 첫번째 문턱이일 것이다.

예술이 삶의 아름다움을 환기하는 인간행위라면, 그 예술이 위와 같이 타자를 배려하는 경계 넘기의 행동을 중심의 파괴나 몰각이라고 비판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경계 이월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시금석이다. 그러므로 미술이 음악을 만나고 음악이 소설을 만나 스스로를 넓혀가는 일을 도모할 수 있다면, 또 문학관에서 문학 작품 속 음악 감상회를 열고 작품 속 미술가들을 전시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자기 경계를 넘는 예술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제2대전문학관이 물리적 건물의 재구성을 넘어 예술 작품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경로를 통해서일 것이다. 이때 문학은 문학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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