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 지난해 14.4% 달해 [한강로 경제브리핑]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 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부실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한계기업 증가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최저임금 상승이 한계기업의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연쇄부실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30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23년 2분기 시중 자금흐름 동향과 주요 이슈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법인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은 14.4%로, 2018년(9.8%)보다 4.6%포인트 올랐다. 한계기업이란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인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을 뜻한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들이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한 수익으로 어느 정도의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이 비율이 100% 밑이라는 것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국내 한계기업 비중은 2019년 11.3%, 2020년 12.7%, 2021년 13.5% 등 꾸준히 확대됐다. 연구소는 “업황 부진, 급격한 트렌드 변화 등으로 국내 한계기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며 “코로나19 충격 완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및 금리 하락 등으로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된 점도 최근 한계기업을 증가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연구소 분석 결과 2018년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한계기업 비중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경우 2018년 8.7% 수준이었던 한계기업 비중이 지난해 12.3%로 확대됐고, 중소기업 한계기업 비중도 같은 기간 10.1%에서 14.9%로 커졌다. 대기업 한계기업과 중소기업 한계기업의 지난해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44.3%, 52.6%로 전체 기업 차입금의존도 평균(26.9%)을 크게 웃돌았다.
연구소는 분석 대상 사업 가운데 음식·숙박업, 소매유통업 등을 ‘한계기업 주의산업’으로 꼽았다. 업황 및 산업 구조의 특징, 산업 내 동질성 등을 고려했을 때 부실화가 우려되는 산업군이라는 뜻이다. 섬유 및 플라스틱 제조 산업의 경우 현재는 한계기업 비중이 높지 않으나 수익성이 낮고 차입금의존도가 높아 향후 환경 변화에 민감한 산업군으로 분류됐다.
경기 둔화와 지난해 가파른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한계기업 증가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2021년 이뤄진 금융지원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낮은 가산금리를 적용받는 혜택을 받았는데, 향후 금융지원 종료 시 이들 기업의 잠재된 신용위험이 급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단기간 내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기업들이 고금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데다, 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한계기업의 부실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국내은행 건전성 위협 요인 및 향후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최근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 비중이 점차 증가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높아졌다”며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 이들이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다시 반등하고 정책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도 상승하면서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사람)의 이자 부담이 다시 커질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28일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33∼6.93% 수준으로 집계됐다.
약 2개월 전인 지난 5월 말(연 3.91∼7.02%)과 비교하면 상당수 대출자에게 적용되는 하단 금리가 0.42%포인트 오른 점이 눈에 띈다. 특히 하단 3%대 금리는 지난 5월 이후 사라졌다.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가 올해 4월 3.44%까지 떨어졌다가 5월 3.56%, 6월 3.70% 등으로 다시 오르면서다.
주택금융공사도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후 처음으로 일반형 상품의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해 정책모기지를 이용하려는 실수요자의 부담도 늘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존 최고 연 4.45%(50년)였던 일반형 금리는 연 4.70%로 오르게 된다. 주금공 측은 “그간 재원 조달 비용 상승, 대출신청 추이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대출금리가 다시 상승하면서 ‘영끌족’의 부담이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5억원을 연 5% 금리에 40년 만기로 빌린 차주의 경우 월 원리금이 241만원 수준이다. 여기서 0.5%포인트만 증가해도 원리금은 258만원으로 17만원 가까이 늘어난다.
한국은행의 움직임에 따라 대출금리 상승기가 길어질 수 있다. 최근 2%포인트로 벌어진 한·미 금리차가 부담이다.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를 경계하며 금리 인상에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벌어진 금리차로 인해 외국인 자금 유출 등 금융 부담이 늘어나면 한은도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소”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고객의 주담대 원리금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을 고려해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은행도 있다. NH농협은행은 금융소비자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해 지난 28일부터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의 대출금리를 0.3%포인트씩 인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NH농협은행의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최저 금리는 3%대 중후반(28일 기준)으로 하락했다.
경기 악화와 조달금리 상승으로 주요 카드사들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지난해보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7조원을 넘어선 결제성 리볼빙 이월잔액은 카드사의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KB국민·하나·우리·삼성카드 등 주요 카드사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었다. 신한카드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31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2% 감소했고, KB국민카드는 1929억원으로 21.5% 줄었다. 하나카드의 순이익은 23.7%, 우리카드는 38.7%, 삼성카드는 8% 각각 감소했다.
올해 들어 급격히 상승한 금리는 카드사의 순이익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카드사는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려오는데 금리 상승에 따라 조달금리도 함께 올랐다. 여기에 경기 악화에 따른 소비 침체와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저신용자, 다중채무자들이 카드대금을 제때 내지 못할 때 이용하는 리볼빙 이월잔액은 7조원을 웃돌고 있다. 이 같은 리볼빙 잔액은 카드사 부실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6월 기준 전업 8개 카드사의 리볼빙 이월잔액은 7조2698억원으로, 지난해 9월 7조원을 돌파한 이후 계속 7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날 313만6000개 신용카드 가맹점 중 95.8%에 해당하는 300만4000개 가맹점에 하반기 우대수수료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연간 매출액 3억원 이하의 영세가맹점(229만1000개)에는 신용카드 0.5%, 체크카드 0.25%의 우대수수료가 적용된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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