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월드컵] 한국-모로코, 女축구 대하는 같은 사명감·엇갈린 희비
공동취재구역서 씁쓸함·환호 대비…탈락 위기 벨호 "아쉽죠, 아쉽네요"
(애들레이드=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축구를 좋아하는 남성은 롤모델이 이미 있습니다. 우린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에게도 롤모델을 만들어주고자 했죠."
모로코 여자축구대표팀의 레날 페드로스 감독은 여자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둔 아랍국가로 축구사에 이름을 남겼다며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페드로스 감독은 아랍국가 모로코에서 여자축구팀의 승리가 품은 '사회적 의미'를 언급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모로코는 30일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의 하인드마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페드로스 감독은 아랍권에서 축구가 주로 '남자 운동'으로 인식되는 상황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페드로스 감독은 "여자축구의 힘을 보여준 것 같다"며 "모로코 축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로코 여성들에게 '롤모델'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페드로스 감독은 "앞으로 (여자축구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모로코는 역량이 있는 팀이다. 세계 무대에 걸맞은 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자축구가 최근 급격히 발전한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공유하는 과제는 '저변 확대'다.
FIFA 랭킹 72위 모로코는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1·2부로 된 여자 프로축구 리그가 운영되는 곳이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모로코축구협회는 2019년 야심 차게 1·2부로 된 여자 프로 리그를 출범했다.
이로써 모로코는 여자프로축구 2부리그를 운영하는 최초의 국가가 됐다. 여자축구가 최근 흥행하는 잉글랜드조차도 2부는 세미프로로 평가된다.
저변 확대는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성과를 내서 여자 실업축구 WK리그·대학·유소녀 등으로 이어지는 '축구 피라미드' 전체에 낙수효과를 내겠다는 포부를 품고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주장 김혜리(인천 현대제철)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성적을 내서 한국에서 축구하는 여자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며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이금민(브라이턴) 역시 지난 26일 "매번 여자축구 저변 확대를 이야기하지 않느냐. 결국 (여자)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 해야 (저변이) 확대된다"며 "개인의 목표보다 중요한 게 여자축구의 발전과 성장이다. 그래서 이 월드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교를 포함해 모든 단체가 (축구를) 하고픈 사람이 많아져야 (축구와 관련된) 조직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대표팀을 본다. 많은 대표팀이 출전한 대회를 보고 꿈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기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1천510명이다. 2014년(1천765명)보다 200명 넘게 줄었다.
'유소녀 전문 선수' 규모는 하락세가 뚜렷하다. 2014년 1천341명이었다가 2020년 916명까지 떨어졌고, 이후에는 소폭 올라 겨우 1천명대를 유지 중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할 '기폭제'가 되길 원했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고개를 떨궜다.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선수들은 하나같이 허탈해했다. 대부분 선수가 굳은 얼굴로 땅을 쳐다본 채 라커룸으로 걸어가며 잠시 정적이 찾아오기도 했다.
팀을 대표해 언론 앞에 선 지소연(수원FC)은 좌절이 덮쳤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은선(서울시청)은 "아쉽죠, 아쉽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김혜리는 덤덤한 표정으로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께 죄송하고,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게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라운드에서 역사적 첫 승의 기쁨을 잔뜩 누리고 뒤늦게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온 모로코 선수들은 자국 취재진과 만나 환호를 내질렀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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