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외교에서 전랑 외교로…‘밉상’ 된 중국 [판다의 정치경제학③]
[스페셜 리포트 : 푸바오 신드롬-판다의 정치경제학]
“넌 영원한 나의 아기 판다야.” 지난 5월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한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가 푸바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모든 판다의 소유권은 중국에 있기 때문에 푸바오가 네 살이 되는 내년이면 짝을 찾기 위해 중국에 돌아가야 한다. 최근 일본과 프랑스에서 자이언트 판다의 중국 반환 소식이 들려오자 한국에서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푸바오도 중국에 돌아가야 하나요’라는 문의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푸바오와의 이별을 아쉬워 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좋은 할부지(사육사)를 다시는 찾을 수 없으니 푸바오를 그냥 한국에 두면 안 되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판다는 왜 각 나라를 돌아다닐까. 왜 다시 중국에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판다 외교의 이면
“판다는 중국의 국보이자 중국과 외국의 우호 교류를 촉진하는 사절로, 아이바오의 첫 새끼 판다 푸바오는 한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새로 태어난 판다 새끼들이 언니 푸바오처럼 양국 국민의 우호적 감정 증진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 에버랜드가 7월 11일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가 암컷 새끼 두 마리를 낳은 사실을 공개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중국의 판다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의 국보이자 중국과 외국의 우호 교류를 촉진하는 사절’, 중국 공산당이 자이언트 판다를 중국의 국보로 지정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중국에서 판다는 동물 그 이상의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이 발행하는 채권은 ‘판다 본드’, 중국이 2008년 올림픽을 개회할 당시 마스코트도 판다일 정도로 중국 내에서 판다의 위상은 높다.
판다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 취약종이다. 2016년 ‘위기’에서 ‘취약’으로 멸종 위기 정도가 한 단계 내려갔지만 여전히 중국 쓰촨성 일대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다. 특이한 외모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중국 정부가 판다를 외교 사절로 활용하게 된 배경이 됐다.
‘판다 외교’는 1941년 중일전쟁 당시 국민당 장제스 총재가 중국을 지원한 미국에 감사의 표시로 판다 한 쌍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1983년 체결된 워싱턴 조약에 따라 희귀 동물을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게 되면서 중국은 상대국에 장기 임대해 주는 형식으로 판다 외교를 이어 갔다.
한국도 1994년 한·중 수교 2주년을 맞아 판다 암수 한 쌍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1998년 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판다의 먹이인 대나무를 조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관리 부담 등을 이유로 중국에 반환했다. 한 마리당 임대 기간은 15년으로, 한쌍에 매년 판다 번식 연구기금 100만 달러를 중국 측에 내야 한다.
판다는 18년 만인 2016년에야 한국을 다시 찾았다. 당시 한·중 정상은 양자 회담에서 ‘한·중 판다보호협력 공동 추진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판다 한 쌍을 중국 정부로부터 선물 받았다. 부모 판다는 계약 기간이 15년, 새끼 판다는 한국에서 탄생했지만 만 4~5세가 되면 중국에 돌려줘야 한다. 멸종 취약종이기 때문에 짝짓기 적령기가 되는 시기에 맞춰 번식시키기 위해서다.
판다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18개국 22개 동물원에 ‘대여’의 형태로 가 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판다를 가장 많이 임대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판다 사랑이 중국만큼이나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6월 탄생한 새끼 판다 샹샹은 생후 6개월째부터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된 뒤 판다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우에노동물원의 마스코트 자리 잡았다. 마이니치신문에는 샹샹을 비롯한 판다들의 ‘우에노 판다 일기’가 연재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샹샹 역시 지난 6월 짝을 찾아 중국 자이언트 판다 보호연구센터로 이송됐다. 당시 샹샹의 팬들이 이른 아침부터 우에노동물원 앞을 가득 채우고 눈물로 배웅한 일화는 유명하다.
가장 최근 판다를 대여 받은 국가는 지난해 판다 암수 한 쌍을 받은 카타르다. 중국이 중동 국가에 판다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최근 중국이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중국이 판다를 해외로 보내는 진짜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에 있다는 지적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 2013년 한 논문에서는 판다 대여와 주요 국제 무역 거래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영국의 에든버러동물원은 2011년 26억 파운드에 달하는 무역 거래의 일환으로 두 마리의 판다를 받았고 같은 해 캐나다와 프랑스는 우라늄 수출 협정을 체결한 후 각각 한 쌍의 판다를 획득했다. 판다를 코펜하겐으로 보내기로 한 합의는 중국과 덴마크 사이에 체결된 40개의 새로운 무역 협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전랑 외교 강화?
중국은 ‘판다 외교’를 통해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 정상이 판다가 있는 국가를 방문할 때면 어김없이 동물원을 찾아 판다 외교를 펼쳤다. 2017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판다가 중국의 강성 외교를 완화하는 보조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의 파워가 점차 커지면서 판다로 대표된 소프트 외교는 중국 내부에서 점점 힘을 잃어 갔다. 특히 2017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국 건설을 위한 새 시대에 진입했다”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판다 외교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대체됐다. 전랑 외교는 친선·우의의 사절로 활용해 온 판다 외교와 달리 중국의 애국주의 흥행 영화 제목인 ‘전랑’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외교를 지칭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 소장은 “미·중 외교 회담에서 고위 임원인 양제츠가 삿대질을 하며 이야기하고 왕이가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게 중국의 외교가 됐다”며 “전랑 외교가 뜨면서 판다 외교는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전랑 외교가 힘을 받는 사이 판다 외교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선도 싸늘해졌다. 판다 한 쌍을 키우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다 보니 다시 판다를 중국에 돌려보내는 국가도 나왔다. 사건도 터졌다. 2003년 중국이 미국에 선물한 수컷 자이언트 판다인 러러가 테네시 주 멤피스 동물원에서 올해 2월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다. 러러는 20년간의 대여 기간이 끝난 올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미국 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가 한눈에도 야윈 러러의 생전 모습을 공개하면서 동물원 측의 학대 의혹이 제기됐고 중국 관영 매체들까지 나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전문가를 보내 공동 부검까지 참여했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심장병으로 판정 받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때아닌 판다의 죽음은 전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전랑 외교가 강화되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의 이미지 악화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늑대 외교의 상징으로 알려진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의문의 행방불명으로 6월 25일 자취를 감추면서 중국의 외교 방향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이상설이지만 일각에서는 권력 투쟁설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병서 소장은 “늑대 외교의 간판이 사라졌다고 늑대 외교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그간 늑대 외교의 부작용이 너무 컸고 전 세계의 반중 정서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친강의 몰락을 계기로 늑대 외교의 강도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소프트 외교가 다시 힘을 얻더라도 중국의 판다 이용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남아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야생 동물을 마구 주고받아선 안 된다며 판다 외교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PETA)의 아시아지부 제이슨 베이커 부회장은 “판다는 가족·친구와 유대 관계가 돈독한 영리하고 사회적인 동물”이라면서 선물처럼 주고받는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별은 모두에게 쉽지 않다. 샹샹을 태운 비행기를 보며 일본 팬은 ‘다녀와’라고 외치며 눈물을 훔쳤고 프랑스에서 태어난 최초의 자이언트 판다 위안멍이 공항 가는 길에 탄 트럭에는 ‘여행 잘 다녀와, 위안멍’이란 문구가 붙었다. 팬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겼지만 기약 없는 이별이다.
푸바오는 번식을 위해 중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이바오와 러바오 또한 한·중이 당초 합의한 15년의 대여 기간이 끝나는 2031년 3월 중국에 돌아가야 한다. 에버랜드 측은 푸바오가 갈 곳을 중국과 사전 협의하고 한국 팬들에게도 푸바오가 지낼 곳을 소개하면서 우려를 낮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푸바오가 중국에 가더라도 1년에 1회는 중국에 가 다양한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간간이 소식을 전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셜 리포트 : 푸바오 신드롬-판다의 정치경제학]
①한국은 ‘푸바오’ 앓이 중…꾸밈없는 콘텐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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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푸바오 유지비 15억원?” 사실은…판다효과 상상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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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판다 외교에서 전랑 외교로…‘밉상’ 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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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쥐 아니야?” 푸바오 동생 왜 작을까?…판다에 대한 6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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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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