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아편유사제)에 대한 항변[기고]

박효순 기자 2023. 7.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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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왜 ‘마약’을 처방할까

“아니 사람 망치고 나라 망치는 마약을 위해 항변이라니…” 제대로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할 수 있다. 물론 조심스럽다.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고 말리기도 한다.

최근 마약과 관련된 문제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어린 청소년들, 평범한 직장인, 주부들까지 마약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퍼져 가고 있다고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대치동에서 두뇌개발음료라고 마약음료를 나누어 주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벌어지고, “어떻게 밥 잡쉈어” 하는 일상대화가 마약을 다룬 드라마 대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엄청난 양의 마약성진통제(의료계의 공식명칭은 아편유사제로 통일)를 처방한 의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돈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망치려 드는 의사들이라는 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진료처방을 가지고 의사를 구속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의사라고 무턱대고 감싸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평복 대한통증학회장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First, Do No Harm” 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의사는 모든 것을 우선하여 환자의 심신에 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득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그 무시무시한 마약을 도대체 의사들은 왜 처방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이 시점에 아편유사제 즉 마약을 진통제로 가장 많이 처방하고 있는 통증치료 의사들의 학술단체인 대한통증학회(대한의학회가 인정하는 유일한 통증관련학회) 입장에서 ‘마약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마녀사냥식 마약 절대금지’와 같은 비현실적인 해결이 아닌, 좀 더 국민의 이해와 긍정적 방향성을 위한 마약관리 문제 및 대안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아편유사제 중독 가능성 높지 않아

아편유사제 즉 마약성 진통제를 의학분야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매우 오래되었다. 잉카문명의 수도인 쿠스코의 두개골 유골에서 발견된 두부천공은 마약성 코카잎 등으로 마취를 하고 뇌수술을 시행했다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고 설사나 감염 등에 아편이 특효약이었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현대의학에 들어와서는 자연성분추출물이 아닌 합성된 마약을 이용해 수술 후 통증이나 암 환자의 통증 완화 치료를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암 환자가 아닌 통증환자들에게 아편유사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97년 미국의 통증학회들이 만성 비암성 통증에 대한 아편유사제 사용을 지지하는 공동 합의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의 연방의료위원회에서 만성 비암성 통증환자에서 아편유사제 처방에 대한 의료 지침을 자유화한 이후 약물 사용량이 급격히 늘게 되었다. 유명한 잡지인 <TIME>이나 <Newsweek>의 표지에는 ‘왜 의사들은 환자들의 질환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그들이 호소하는 통증에 관심이 없는가?’ 라는 지적과 함께 ‘효과가 뛰어난 마약성 진통제 등을 왜 충분히 처방하지 않는가’ 하고 따지는 듯한 기사가 실린 적도 있었다.

마약성 진통제는 수술직후의 통증, 암에 의한 통증이나 복합부위통증증후군처럼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약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염진통제는 당연히 통증 초기에 사용해야 하지만 이후 약물용량을 늘려도 이에 비례해 진통효과가 더 나타나지 않고 부작용만 늘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진통제를 오래 먹고 속 다 버렸다는 어르신들 말씀이 사실인 것은, 한때 미국에서 월마트 같은 곳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소염진통제가 위장 출혈을 유발하고 이로 인한 사망자수가 자동차 사고환자보다 더 많다는 통계 발표에서 증명되고 있다.

반면 아편유사제는 용량을 늘릴수록 진통효과가 더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위장관을 포한 내부 장기의 손상도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말기암환자에 있어 죽음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을 유일하게 줄여줄 수 있는 약제도 아편유사제이다. 의사에 의해 적절히 관리되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된다면 우려하는 것과 같은 중독자가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 많은 임상 관찰과 연구논문으로 제시되고 있다. 아편유사제는 중독의 위험이 있으니 아무리 아파도 절대 줄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옛날 의사들이야 말로 그 우려는 이해하지만 환자의 고통을 무시하고 과학이 아닌 미신을 믿는 사람으로 비난 받을 수 있다.

■아편유사제 오남용, 사회적 이슈로

2019년 발표된 OECD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의 아편유사제 사용량은 32개국 중 28위 정도의 낮은 사용국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편유사제를 한달 이상 처방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과 같이 과용량의 마약이 유통되기는 쉽지 않은 구조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급여로 인정되는 하루 최대용량이 정해져 있어 아무리 많이 복용하고 싶어도 비급여라는 비용부담으로 선뜻 의사나 환자 모두 선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이평복 대한통증학회장

2019년 대한민국 한림원의 주도로 이루어진 중독현황 연구에 참여한 통증학회 연구팀은 어느 정도 처방과 사용량의 증가는 있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였으나 이로 인한 중복처방이나 심각한 중독사고 등의 위중한 부작용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연구과정에서는 아편유사제에 대한 규제만 있고 이에 대한 추적관찰이나 국가차원의 마약 원인성 사망통계 등의 데이터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했었다.

마약성 진통제가 정말 최고의 진통제로 각광만 받을 수는 없다. 당연히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꾸 내성이 생겨 점점 용량을 올려야 효과를 보게 되는 상태에서 약이 떨어지면 금단증상을 보이는 신체적 중독양상과 약물 그 자체에 의한 고통 없는 황홀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의존이라는 정신적 중독까지 그래서 결국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폐인이 되고 만다. 실제 미국에서는 아편유사제 오남용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통계에 따르면 아편유사제에 의해 매일 115명이 사망하고 지난 20년간 40만명이 과용량으로 사망했다. 결국 2011년에 아편유사제 처방의 오남용을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지침인 오남용 예방 계획이 발표되었고 2019년 대표적 아편유사제 제약회사인 퍼듀파마는 마약 남용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 받고 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환자의 아편유사제 처방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진료거부로 소송을 당할 수 있었다. 아편유사제를 처방해 주지 않는다고 환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상당수이다. 따라서 차제에 한국의 아편유사제의 오남용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중독 전문가 부재로 중독 관리 부실

첫째, 교육의 부재이다. 아편유사제에 대한 교육을 학생때부터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전문학회에서도 아편유사제에 대한 의사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많지 않다. 환자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다. 과거 통증학회에서 시행했던 아편유사제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도 조사에서 사전에 약제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충분하게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았으며, 약제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더라면 아편유사제를 처방 받지 않았을 거라 대답한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둘째, 현재 식약처에서 발표한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 안전사용 기준’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 수준이며 많은 의사들은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는 지 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기준은 단순히 약제의 처방용량, 처방기간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실제 임상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수 많은 상황들을 제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셋째, 아편유사제를 처방하기 전에 환자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우선 처방 받을 환자가 아편유사제가 꼭 필요한지, 마약중독이나 다른 약물에 대한 오남용의 기왕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솔직이 짧은 진료시간동안 다시 인터넷에 연결해서 확인한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소변을 이용한 도핑검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검사가 불편하고 강제성이 없기에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넷째, 미사용 아편유사제 회수 시스템의 실효성 부족이다. 아편유사제를 더 이상 복용할 수 없거나, 말기 암환자의 사망으로 인해 미사용 약이 남게 되면 아편유사제는 반드시 전량 회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약제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든지, 음성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귀찮게 약을 반납할 이유가 없고, 약국도 관리의 불편함, 행정적 번거로움으로 약제 반납이 반갑지만은 않다.

마지막으로, 국가적 관리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아편유사제 처방환자의 추적관찰과 이로 인한 중독사고나 사망사고에 대한 보고 시스템이 없어 통계가 전무하다. 더불어 중독의심환자가 있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지침이 없다. 재활을 위한 사립시설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운영하기는 하지만 주로 일반 마약중독자들의 재활을 위한 시설이며, 아편유사제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마약 중독자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 20여 곳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이 있으나, 중독 전문가의 부재로 실제 운영되는 곳은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게 현 대한민국 마약 중독관리의 현실이다.

이평복 대한통증학회장

■오남용 교육에 일반인까지 포함을

따라서 첫째, 아편유사제 오남용 예방을 위한 첫 걸음은 교육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육의 대상은 의료인뿐만 아니라 환자와 일반인을 포함한다. 의사 면허 유지를 위한 필수평점 이수를 위해 아편유사제에 대한 교육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편유사제를 투여 받는 모든 환자들은 의료진으로부터 약제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 및 약물 관리법을 교육 받고, 약제 사용에 대한 동의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인들 상대로는 의료용 마약이라 하더라도 오남용 했을 경우 중독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둘째, 현재 식약처의 아편유사제 사용 가이드라인보다 더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약제의 허용량이나 허용기간에 한정된 가이드라인은 복잡한 임상 현장을 고려할 때, 의사나 환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약제 사용법과 더불어 약물을 처방하기 이전에 개별 환자의 마약류 및 향정신성 약물의 중독여부에 대한 선별검사법과 아편유사제를 사용하는 도중 약물 의존성이 의심되었을 때 어떻게 보고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 충분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분야야 말로 필수 의료이며,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분야이다.

셋째, 미사용 아편유사제의 수거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아편유사제를 반환했을 때, 약제비의 환불을 포함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약국도 반환 받은 미사용 약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대신 모든 아편유사제에 일련번호를 부과하여 미사용약제가 불법적으로 유통되었을 경우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환자의 마약류 및 향정신성 의약품 의존성에 대한 정보를 의사가 쉽게 공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환자의 진술만 의존하여 아편유사제를 처방할 경우, 극단적인 경우에 마약사범에게도 아편유사제를 처방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마약중독이 의심되었을 경우, 의사가 아편유사제 처방을 금지하고, 중독 검사 및 치료를 권고하며, 심한 경우에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적인 안정장치가 보완되어야 한다.

■세련된 투약·관리·재활시스템 필요

통증학회는 2017년 이미 학회지를 통해 아편유사제의 처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 최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서 다시 한번 모든 회원들에게 외래현장에서 아편유사제의 처방과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수칙을 전달하였다.

이런 행동수칙이 노출되면 중독위험환자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기에 지면에는 공개할 수 없지만, 행동수칙에는 처방일수에 맞추지 않고 예정일 보다 일찍 방문해 빈번히 처방을 요구했을 때의 대처방법 등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아편유사제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신경치료 등 대체할 수 있는 통증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구하여 시행한다 와 같은 수칙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이 국가적 정책과 결합되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유명인들의 대마초 사건, 그리고 당시 어린 학생들이 환각제인 본드를 구하러 다니는 일들이 많았었다. 최근에는 마약류의 종류가 더 대담해졌으며 유명연예인의 마약 기사나 어린 학생들에게 노출되는 사건은 여전하다. 일련의 마약과의 전쟁은 식상한 면이 있다. 이번엔 좀 세련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면 좋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고 필요한 진통제를 먹으면 된다. 통증치료를 위한 주사도 맞아도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만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아편유사제 오남용의 문제가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백배 찬성하지만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한다.

아편유사제는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약제이다. ‘마약 처방은 구속’과 같은 심한 규제는 의사들로 하여금 아편유사제 처방을 꺼리게 만들어 막상 필요한 환자들은 진통제를 처방 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좀 더 차분하고 포괄적인 아편유사제 관리 방법에 대해 통증학회 등과 같은 전문가 집단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서둘러 투약, 관리, 재활 등 사회적 시스템을 보완하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글·이평복 대한통증학회장(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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