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강우로 쌀 수확량 8% 줄어”… 농지 개발 사활 건 中 [심층기획-식량안보 위협하는 기후 위기]
농작물 생산 어려운 고염분 토지 33만㎢
1959∼1961년 대기근에 4500만명 숨져
식량 안보 트라우마에 ‘기후 위기’ 집착
최근 폭염 등 이변에 농작물 손실 커져
유전자 편집 작물 연구 전 세계가 관심
日, 유전자 가위 활용 방울토마토 선봬
향후 수십억달러 규모 시장 형성 전망
전 세계 평균은 100.3%… 5분의 1 수준
“이상 기후·국제정세 외면 진단 나몰라라
전쟁 발발 땐 무기 부족보다 더 큰 위협”
중국이 식량 안보에 사활을 거는 것은 대약진 운동 시기 발생했던 대기근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가 쓴 ‘마오쩌둥(毛澤東)의 대기근(2017년)’에 따르면 1959∼1961년 3년간 중국에서 최대 4500만명이 굶어 죽었다. 6억6000만명으로 추정되는 당시 전체 인구의 약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국은 전 세계 경작지의 7%에 불과한 땅으로 세계 인구의 22%나 되는 자국인을 먹여 살려야 한다. 특히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고알칼리성·고염분 토지가 33만㎢에 달한다. 남한 면적의 약 3.3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식량 안보를 강조해 온 중국은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 개발에 적극적이다. 시 주석은 “경작지 보호를 강화하고 경작지의 질을 높여 알칼리성 토지 이용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고 20일 주문했다.
CCTV는 지금까지 중국이 알칼리성 토지에 농사짓는 기술 40개 이상을 개발하고 신품종 50여 가지를 육성했다고 5월 보도했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염분과 알칼리성에 내성이 있도록 개발된 ‘해수(海水) 벼’도 그중 하나다. 현지 매체 광명일보는 지난해 말 기준 해수 벼 재배면적이 100만무(亩·6만6670㏊)를 넘어섰다고 1월 13일 보도했다. 2020년 고염분·고알칼리성 농지 10만무에서 본격적인 해수 벼 재배에 나선 뒤 2년 만에 얻은 성과다. 중국 당국은 10년 이내 해수 벼 재배 면적을 1억무까지 늘려 연간 3000만t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가뭄 해소를 위한 인공강우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인공강우는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날아가 요오드화은과 염화칼슘 등의 구름씨(비정핵·응결핵)를 뿌려 인위적으로 비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식량안보 위기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나라도 이상 기후 현상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의 폭염이 작물 재배 실패의 미래를 의미한다고 21일 경고했다. 영국 리즈대 존 마샴 기후 과학 교수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식량 시스템은 전 지구적”이라며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주요 농작물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식량 공급 및 가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날씨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기술은 21세기 생명공학 혁명으로 평가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작물 내부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이다.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추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전자 변형 작물(GMO)과 다르다. GMO가 식품의 안전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세계 각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유전자 편집 작물이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고 독일 도이체벨레(DW)방송은 진단했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작물을 내놓은 곳은 일본이다. 2021년 일본 도쿄의 한 기업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아미노산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가바) 함량을 일반 토마토보다 4∼5배 높인 방울토마토를 선보였다. 가바는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DW는 2011년 100건도 안 됐던 유전자 편집 작물 특허가 2019년이 되자 2000건에 달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미국과 중국이 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10년 뒤엔 수십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철호 명예이사장 “2020∼2022년 韓 곡물자급률 평균 19.5%… 길어야 두 달 버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2022년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평균 19.5% 수준이다. 곡물자급률은 쌀·보리·사료용 작물 등 각종 곡물의 국내 소비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같은 기간 전 세계 곡물자급률은 평균 100.3%로 대부분 국가가 자국에서 소비되는 곡물을 직접 생산하며 식량 안보를 지킨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격차다. 이 이사장은 “한국의 식량 안보 정책은 세계적인 흐름에서 역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 기후 현상과 복잡한 국제정세 셈법 속 한국의 식량안보 위기는 더 커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단조차 없다는 평가다. 이 이사장은 유독 한국만 식용곡물자급률을 식량자급률로 내세워 현실을 왜곡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용곡물자급률은 곡물자급률과 달리 사료용 곡물을 제외한 수치다. 이렇게 전체 수입 곡물량(연간 1800만t)에서 사료곡물 수입량(연간 1200만t)을 빼고 계산한 한국의 식용곡물자급률은 45% 수준인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를 식량자급률로 부풀려 발표해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수입한 사료 전량이 축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가리고 통계를 내면 식량 안보를 이야기할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식량 안보 정책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국가로 곡물자급률이 90%에 달하는 중국을 꼽았다. 특히 황무지를 식량기지로 개척하는 농지 확대 전략을 높이 샀다. 한국은 잘못된 농업 정책으로 오히려 농지가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경지 면적은 152만8000㏊로 2012년 이후 10년 연속 감소세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에 발의된 ‘식량안보특별법 제정안’에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정안엔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와 공급 등 식량안보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이런 법이 발의돼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며 “이번에야말로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한국이 식량 안보가 튼튼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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