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염이 뭐냐면요…” 스타트업 女 창업자 투자 심사부터 ‘장벽’ [심층기획-스타트업 유리천장]

이지민 2023. 7. 3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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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유니콘사업 女심사위원 극소수
2023년 예비유니콘 女심사위원 6.6%
선발된 15곳 중 女대표 기업은 ‘0’
‘여성 위원 30%↑’ 법률 개정 무색
남성 편중 여전… 진입 장벽 높아
‘여성+기술’ 펨테크 산업 급성장
2022년 여성 창업자 전체 42% 기록
투자 결정 ‘女심사역 30%’는 부족
여성대표 “서비스 구구절절 설명”
중기부 “IT 여성전문가 풀 부족”

“사업 발표를 할 때 여성 심사역이 있으면 정말 감사하죠. ‘질염이 뭐냐면요’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박지현 쓰리제이 대표는 30일 여성 심사역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기술기반 업종 여성 창업자가 늘고 펨테크(Female+Tech: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와 상품)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도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하는 심사역 중 여성은 여전히 소수다. 문제는 정부 지원 사업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남성 심사위원 편중’ 문제가 스타트업 업계 유리천장을 더 두껍게 하는 요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소벤처기업부가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예비유니콘 선발 사업에서 평가위원 15명 중 여성은 오직 한 명이었으며, 60명으로 구성된 국민평가위원에서 여성은 10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각각 6.6%, 16.6%에 불과했다. 심사위원 성비와 최종 선발 기업 성비 간 상관관계는 미지수지만, 지난달 발표된 최종 15개 예비유니콘 중 여성이 회사 대표인 여성기업은 한 곳도 없다.

중기부의 예비유니콘 사업은 최대 200억원의 기술보증기급 특별보증 등을 지원하며, 글로벌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한 해외 진출을 뒷받침한다.

중기부는 2018년 정부지원 사업 선정 과정에서 여성기업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심사 또는 평가위원 구성에 여성위원을 30% 이상 포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0년 10월부터는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법적 근거도 생겼다. 여성기업활동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에 ‘여성위원 비율에 관한 사항’을 반드시 포함하게 한 것이다.
다만 2020년 12월 마련한 기본계획에는 2018년 밝힌 30% 시점을 2024년까지로 늘려 적시했다. 2020년 10%, 2021년 15%, 2022년 20%, 2023년 25%, 2024년 30%를 단계적으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30%’는 여성기업 현황과 여성 창업 실태를 고려했을 때 결코 높은 기준이 아니다. 중기부가 올해 3월 발표한 ‘여성기업 현황’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여성기업 수는 295만개로 전체 기업의 40.5%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의 기술 창업도 매해 꾸준히 늘고 있다. 중기부 창업기업동향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전체 19만674명 중 36.1%를 차지했던 기술기반 업종 여성 창업자는 2022년 22만9416명 중 9만5413명에 달해 41.6%를 기록했다. 기술기반 업종을 포함해 전체 창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31만7479명 중 45.9%에 달했다.

예비유니콘 사업 외에 아기유니콘, 신산업 스타트업 육성 사업도 여성 평가위원 비중이 적은 상황은 비슷하다. 아기유니콘 사업 평가위원 57명 중 여성은 12명(21%), 국민평가위원 56명 중 여성은 22명(39%)이었다. 아기유니콘은 업력 7년 이내 창업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 개척자금 최대 3억원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신산업 스타트업 육성 사업에서 평가위원 243명 중 여성은 59명(24.2%), 국민평가위원 72명 중 여성은 26명(36%)이다. 올해 본격 추진하는 이 사업은 첨단 기술 스타트업 150곳을 선정해 기업당 최대 11억원의 자금을 직접 지원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여성위원 30% 비율이 일부 사업의 국민평가위원에게서만 적용된 데 관해 “기본계획에 명시한 대로 2024년 말까지는 적용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 분야에 여성 전문가 풀(Pool)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자체 파악한 여성 풀은 10% 중반대”라며 “이공계 여성 인력이 평가위원 풀에 들어가도록 적극 홍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11년 연속으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꼴찌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29개국 중 최하위다. 국내에서 창업에 나선 여성들이 겪는 애로는 이 같은 불명예스러운 지표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 창업자들이 겪는 차별을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개선되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펨테크 스타트업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평가위원 성비 구성 지침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질 미생물 검사 서비스 체킷을 운영하는 쓰리제이의 박 대표는 “남성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이해시키는 데 서론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평가위원 성별 비율은 최종 결과에서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고 했다.

중기부의 해명이 변명에 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펨테크 스타트업 세이브앤코의 박지원 대표는 “지침을 마련했으면 재모집을 해서라도 지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여성 창업가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한국이 미국보다 나은 점이 더 많다”면서도 “정책을 수립한 노력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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