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이슈] 한은 직원 70% “기재부 아닌 금통위가 임금 정해야”
한은, 13년간 평균 임금인상률 1.4%에 그쳐
“기재부가 임금 통제…금통위로 이관해야”
“한국은행의 인건비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노사간 협상에 따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해야 한다.”
한국은행 노동조합
한국은행 직원 10명 중 7명은 한은 임직원의 인건비 등 급여성 경비 예산을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직접 결정하도록 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은법에 따르면 한은의 급여성 경비 관련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법 개정을 통해 임금 결정권을 금통위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 노동조합은 지난 12~21일 국내 재근 직원 2050명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한 결과 직원 70.3%(1442명)가 한은법 98조 개정에 지지하면서 서명운동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은 노조는 “한은 임직원의 급여를 기재부가 사전승인하는 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한은 본관 앞에서 출근길 피켓시위도 벌인 바 있다.
한은법 개정안은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한은의 인건비와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급여성 경비예산에 대한 기재부 장관의 사전승인권을 폐지하고, 한은 예산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 상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한은의 급여성 경비예산에 대한 정부의 사전승인권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가 인건비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금 결정권 확보는 한은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한은의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기본급·상여금·수당·급여성 복리후생비 포함)은 1억331만원이다. 신입직원의 평균 보수액은 5176만원이다. 급여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시중은행이나 비교 대상 금융공공기관보다는 낮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하나은행의 평균 연봉은 1억1459만원, 국민은행은 1억1369만원, 신한은행이 1억970만원 등으로 한은 연봉을 넘어섰다.
시중은행은 실적 개선에 힘입어 임직원 연봉을 계속 인상했지만, 한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간 임금 인상률이 매년 0~2%대에 머물렀다. 기재부가 승인한 지난해 한국은행의 임금 인상률은 1.2%인데, 이는 공무원 임금인상률(1.4%)에도 못 미쳤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한은 임직원 임금 인상률이 2%를 넘긴 것은 2번 뿐인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깎인 셈”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발권력(돈을 새로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한은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부처가 중앙은행의 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는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한은 노조의 주장이다. 실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 중앙은행은 자체적으로 예산을 짠다. 유희준 노조위원장은 “일본도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정부가 일본은행이 낸 예산안을 거부할 경우 명확한 이유를 들어 공표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임금 경쟁력 약화는 한 때 ‘신의 직장’이라고 불렸던 한은의 위상과 인기가 예전만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한은 신입 행원 63명 가운데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은 2명에 그쳤다. 과거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이른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졸업생이 신입 행원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편중이 심각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SKY 졸업장이 반드시 실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은 직원들은 명문대 출신 인력이 연봉이 더 높은 민간기업을 선호하면서 한은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5월 한국은행 창립 73주년 기념사에서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총재는 “한은은 지난 수십 년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손쉽게 불러 모을 수 있었지만, 민간부문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수 인재 확보에 대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며 “우리 급여와 복지 수준이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고개를 든 기재부의 임금 인상 자제 기조 속에서 이 총재와 한은 경영진이 한은법 개정안 입법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이 총재도 기재부가 한은 임직원의 급여성 경비 예산을 사전승인하는 제도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독립성을 중심으로 보면 급여성 경비를 기재부로부터 사전 승인 받는 것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한은이 준공공기관으로서 급여성 지출에 대한 책임성을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나아가 “기재부가 한은을 다른 공공금융기관과 같이 판단하는 게 바람직한지, 한은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게 바람직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은 노조는 “국회에서 한국은행과 기재부의 관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발의된 법안을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행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안타깝기 그지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한은법 개정은 추진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합원이 한 목소리를 내고 경영진이 함께 나서야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 노조는 조만간 이 총재를 만나 서명 운동 결과를 결과를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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