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상봉쇄와 식량안보

관리자 2023. 7. 3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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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가장 흔한 전략 전술은 봉쇄다.

공성전이 주축이던 시절 성안의 수비군이든 성 밖의 공격군이든 장기간 버틸 물과 식량 공급은 필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1941년 9월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해 300만명의 시민에게 식량위기가 급습했다.

국제 교역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시대에 해상봉쇄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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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가장 흔한 전략 전술은 봉쇄다. 공성전이 주축이던 시절 성안의 수비군이든 성 밖의 공격군이든 장기간 버틸 물과 식량 공급은 필수였다. 근대 이후 봉쇄는 대규모·장기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1941년 9월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해 300만명의 시민에게 식량위기가 급습했다. 872일 후 봉쇄가 풀릴 때까지 약 100만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국제 교역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시대에 해상봉쇄는 치명적이다. 해상봉쇄가 효과를 발휘한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의 대부분 기간 독일은 이른바 ‘순무의 겨울’을 보내야 했다. 1916년 여름부터 주식인 감자가 동났고 흉작이 겹쳐 그해 말에는 감자의 씨가 말라버렸다. 그러자 감자 대용으로 순무와 양배추의 교잡종인 루타바가가 등장했다. 독일인들은 루타바가로 빵·샐러드·스튜 등을 만들어 먹으며 버텼다. 이마저도 수급이 어려워지자 톱밥에 소량의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만든 ‘톱밥 빵’이 공급됐다. 영양실조로 수십만명이 숨졌고 면역력 약화로 숨진 사람은 더 많았다.

원인은 영국의 해안봉쇄 작전에 있었다. 당시 독일은 막강한 해군력을 갖췄으나 세계 최강인 영국의 해군력에는 못 미쳤다.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버텼지만, 영국의 해상봉쇄를 뚫기는 역부족이었다. 다급한 독일 수뇌부는 1918년 해군에 총출동 명령을 내렸다. 최후 결전으로 해상봉쇄를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살행위에 가깝다고 판단했던 해병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내란은 전국으로 번졌다. 독일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력한 해군의 존재만으로 봉쇄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일본은 1941년 12월초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급습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했다. 미얀마가 일본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가 위기에 빠졌다. 미얀마는 인도에 상당량의 쌀 등 곡물을 공급하는 곡창지대였는데 수입이 중단됐다. 1942년 겨울 인도 벵골에 폭풍 피해가 겹치고 미얀마 전쟁 난민이 유입되면서 쌀값이 폭등했다. 벵골의 영국 관리들은 본국에 식량 공급을 요청했지만, 처칠 전시 내각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영국 본토도 식량이 부족한 상황인 데다 2개월 이상 걸리는 긴 수송로 또한 일본 해군의 위협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1943년말까지 최대 300만명이 아사했다.

지난달 아프리카 7개국 지도자로 구성된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종전을 촉구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이처럼 전쟁 당사국을 찾아가 종전을 호소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식량위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 중 하나가 14억5000만명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이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한 뒤 러시아 해군이 흑해를 장악하자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막혔다. 유엔(UN·국제연합)의 중재로 흑해를 통한 수출길이 간신히 열렸지만 한시적 합의에 불과했고, 최근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 상황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2021년 기준 국내 전체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에 불과하다. 남북한의 특수 관계, 중국·일본·러시아가 끼어 있는 3면의 바다,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둔 강대국의 대치 상황 등 우리나라의 해상운송로는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유비무환의 심정으로 식량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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