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종자 수출…절화 역수입 ‘뒤통수’
‘그레이스’ 이름으로 유입 의혹
농가 “현지서만 판매 약속 어겨”
농진청 “유전자 검사 진행 예정”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국화 ‘백강’이 외국에 종자 수출된 후 최근 절화로 역수입돼 시장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농민들은 정부가 국산 품종을 해외에 수출해 로열티를 받게 됐다는 성과 알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역으로 그 종자로 재배한 농산물이 국내에 유입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차단하지 못했다며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26일 김윤식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장과 전수익 경남절화연구회장 등 농가 대표단은 농진청을 항의 방문해 베트남에서 우리나라로 수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화 ‘백강’ 절화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농가들은 “농진청이 베트남에 국산 ‘백강’ 종자를 수출한다고 발표하면서 이 품종은 현지에서만 판매되고, 다른 나라로 수출할 때는 반드시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해 우리나라에서 ‘백강’을 재배하는 농가를 보호할 안전망을 갖추겠다고 약속했으나 최근 시중에 베트남산이 유통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6월28일 농진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베트남에 7년간 약 4억원의 로열티를 받고 ‘백강’ 종자 수출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고 홍보한 바 있다. 당시 농진청은 국내로 역유입될 우려가 있다는 농가 지적에 따라 안전장치 마련도 약속했다. ‘백강’ 종자는 지난해 6월부터 현지 시험재배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농진청의 설명대로라면 우리나라에 베트남산 ‘백강’ 국화가 수입되려면 농진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아무런 통제 없이 수입돼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남 창원의 국화농가 정태식씨(65)는 “이전에 농진청에서 ‘백강’을 개발할 당시 직접 해당 품종의 시험재배에 참여했기 때문에 ‘백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최근 꽃시장에 나돌고 있는 베트남산 국화 ‘그레이스’는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백강’ 품종이 맞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국화농가들에 따르면 ‘그레이스’로 알려진 베트남산 ‘백강’ 국화는 이미 3차례나 우리나라로 수입돼 대량 유통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농진청의 종자 수출이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경남 창원의 국화농가 변태안씨(73)는 “우리 농민들이 ‘백강’ 품종을 선호하게 된 것은 베트남에서 일본산 품종 ‘신마’ ‘마코토’ 등을 재배해 우리나라로 수출할 경우 우리 농가가 재배한 일본 품종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신품종 ‘백강’을 재배하면 자연스럽게 원산지 구분이 된다고 보고 품종 도입에 적극 나선 것인데 당국에서 이런 점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변씨는 “만약에 이번에 확인된 베트남산 ‘백강’도 박스갈이돼 유통됐다면 국산 ‘백강’으로 팔려나가지 않았겠느냐”고 꼬집었다.
농민들은 “앞으로도 이름만 바꿔 얼마든지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다”며 “외국에서 우리 품종을 가져다 재배한 후 우리나라에 다시 수출해 시장을 잠식하는 문제에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영란 농진청 화훼과장은 “먼저 정확하게 해당 베트남산 국화가 ‘백강’ 품종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백강’으로 확인되면 향후 수입검역 과정에서 바이러스 검사에 더해 유전자 검사도 포함하는 방안을 건의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유전자 검사 포함 여부는 검역기관 소관 업무인 만큼 강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편 국화 신품종 ‘백강’은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개발된 고급 화훼 품종으로, 농진청에서 2015년 개발에 성공한 흰색 대형 국화다. 사계절 생산이 가능한 데다 국화 재배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질병인 흰녹병에 저항성이 있어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농진청은 7년간 약 4억원의 로열티를 받고 베트남과 수출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국내 화훼분야 종자 수출로는 가장 큰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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