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마음 놓고 농사지을 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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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충북 괴산으로 이주했던 2016년은 귀농붐이 한창 절정에 다다른 때였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약 7년이 지난 이번 여름, 예전보다 더욱 심각해진 이상기후와 폭우에 무너져버린 콩밭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귀농을 다짐하던 때가 꿈처럼 떠올랐다.
그때는 우리나라 농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 우리 가족이 먹을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기르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절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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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충북 괴산으로 이주했던 2016년은 귀농붐이 한창 절정에 다다른 때였다. 도시의 삶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됐고, 이에 힘을 실어주는 듯 정부의 귀농 장려 정책도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약 7년이 지난 이번 여름, 예전보다 더욱 심각해진 이상기후와 폭우에 무너져버린 콩밭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귀농을 다짐하던 때가 꿈처럼 떠올랐다. 그때는 우리나라 농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 우리 가족이 먹을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기르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절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든 산업분야에는 외부에서 오는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이나 재화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 요인은 어떻게든 융통성 있게 줄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심각한 자연재해 앞에서 ‘융통성’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달 괴산에 물난리가 나기 전날, 우리 농장은 7명의 인력을 고용해 약 1만6529㎡(5000평)의 밭에 양배추 후작으로 콩을 심었다. 비가 많이 온다 싶긴 했지만, 장마철이기도 했고 노지 농사는 자연의 때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심어야만 했다.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날 수확해야 할 ‘대학찰옥수수’와 초당옥수수 작업계획을 상기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새벽 4시, 비가 내리는 낌새가 심상치 않더니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가 침수될 위기라 짐을 옮기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이어 괴산댐과 인접한 지역에 대피령이 내려졌고 전날 우리가 땀 흘려 콩을 심은 밭은 빗물에 잠겨버렸다. 그나마 우리가 대출금으로 처음 마련한 트랙터를 전날 다른 밭으로 옮겨놓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달까.
괴산댐을 방류하자 밭 옆 제방이 무너졌고, 강둑의 흙이 쓸려 덮쳐와 밭의 진입로 중 한곳이 유실됐으며, 콩 모종 위로 1m 이상 흙이 쌓여버렸다. 아이들이 다니는 병설 유치원에서는 각 가정의 안전을 확인하는 연락이 계속 오갔다. 강한 빗줄기는 며칠 뒤로 미룬 초당옥수수를 수확할 때까지도 그칠 줄을 몰랐다. 연일 계속된 많은 비로 적잖은 옥수수가 녹아내리거나 수확 직후부터 쉰내가 나기 시작했다. 주문받은 양을 발송 취소하고 고객에게 환급해야 할 정도로 수확량이나 상품성 있는 게 턱없이 부족했다.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내 아이들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며 지은 농사인데. 우리가 게으르거나 무지해서도 아닌 비 때문이라니. 잠긴 밭은 어찌할 수 없지만 상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썩은 옥수수 상태를 마주하자니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
자연은 농민의 일터지만, 이 일터의 안전과 생산물 품질은 농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달려 있다. 다만 농민의 이 일터는 매년 심각해지는 이상기후를 실감하는 최전선일 뿐이다. 기후변화는 농민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숨 막히는 흙더미가 농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숨구멍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7월이었다.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김지영 라온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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