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지지부진' 민주당, OB들 총선 출격 채비에 떨고 있다
당내 총선 앞 혁신 기류와 엇박자 우려
추미애 등 일부 강성 팬덤 편승 움직임
이재명 리더십에 'OB 리스크' 될 공산
전문가 "국민 눈높이 달라져" 회의적
내년 22대 총선을 9개월 앞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화두는 단연 '혁신'이다. 역대 총선마다 기성 정당들이 의례적으로 혁신 경쟁에 나서지만,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전국선거에서 연패 당한 민주당에게 혁신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과제다. 돈봉투 사건과 가상자산(코인) 투자 논란 등으로 치명상을 입은 도덕성과 2020년 총선 이후 민주당을 떠난 지지층을 회복하려면 타성에 젖은 제1야당의 모습에서 환골탈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 방향을 두고 민주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총선 출마 채비를 서두르는 이른바 '민주당 올드보이'들이 10여 명에 이르면서 당 안팎의 근심의 목소리가 크다. 새로운 인물과 비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마당에 혁신 명분까지 잃을 수 있고, 당내 신구 인사들 간 충돌로 당력이 소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구 정치인들의 귀환이 가져올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남·수도권서 출마 시동 중인 민주당 OB들
총선 출마 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는 인사들은 당의 텃밭인 호남 재입성을 노린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이전 지역구는 전남 목포지만, 내년 총선에서는 고향(진도)인 전남 해남·완도·진도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재 윤재갑 민주당 의원 지역구다. 박 전 원장은 30일 본보 통화에서 "저는 꾸준히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추수할 권한이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념을 전파할 책임과 호남 정치 복원을 위해 출마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복당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일찌감치 광주 서을에 터를 잡고 지역구 다지기에 들어갔다. 이곳은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지역구다. 양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으나, 이후 보좌관의 성폭력 사건으로 탈당했다. 천 전 장관은 이 지역에서 2015년 재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 각각 무소속과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2016년 총선 당시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병에서 지역 주민들과 접촉면을 늘리며 출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전북 정읍·고창에서는 유성엽 전 의원이 재출마하면서 현역 윤준병 의원과의 리턴매치가 예고된 상태다.
출마 채비를 갖춘 이들이 지역구를 사실상 결정한 호남과 달리 수도권을 노리는 인사들은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최근 당 안팎 현안에 목소리를 부쩍 높이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 준비를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에 파다하다. 추 전 장관 측은 다만 지역구와 관련해선 "주변에서 여러 요구를 많이 받고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총선 출마가 유력하다. 그는 지난 15일 진성준 의원 초청 민주당 서울 강서을 지역위원회 특강에 나서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실장 측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출마 예정지는 주로 이전 지역구가 거론되지만, 전략공천 형식으로 어느 지역이든 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아직 출마 계획이 있진 않다"면서도 '출마 가능성이 없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반면, 이종걸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이전 지역구인 경기 안양 만안 대신 서울 종로로 출마지를 확정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신계륜 전 의원은 각각 이전 지역구였던 서울 동작갑과 서울 성북을에 출사표를 던질 참이다.
일부 강성 팬덤 편승... 이재명 리더십에도 리스크
올드보이들의 대거 귀환에 당내에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한 3선 의원은 "선배들이 어려운 지역에 헌신한다면 몰라도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접근할 경우 내년 총선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4선 의원은 "세대교체로 당이 더 젊게 가도 부족한 마당에 올드보이들의 귀환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3선 이상 동일 지역구 출마 제한' 기준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불만은 이재명 대표 리더십을 향하고 있다. 이 대표 취임 후 박 전 원장(지난해 12월)과 신계륜·전병헌 전 의원(올해 4월)의 복당이 이뤄지면서 판을 깔아줬다는 것이다. 비이재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판만 벌인 채 교통정리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부 올드보이들이 이 대표의 총선 공천권 행사를 의식해 당의 원로로서 현 민주당 체제에 쓴소리는커녕 '개딸'로 불리는 강성 팬덤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두문불출하던 추 전 장관이 방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장관직 사퇴와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당시 국무총리)를 탓하는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16일 이 대표 팬덤과 공동 간담회를 개최하며 보조를 맞췄다. 한 초선 의원은 "원로들이 열성 당원들에게 점수 따려는 얘기만 해서는 민주당과 일반 국민들 간 인식의 괴리만 더욱 벌어질 것"이라며 "이 대표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는 올드보이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무슨 수로 막겠냐"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개인의 출마 의사를 원천 봉쇄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신선한 인물을 발굴하는 게 시급해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혁신위원회 출범과 인적 쇄신을 통해 변화를 강조해온 것에 비춰 엇박자를 자초하는 모양새다.
전문가 "국민 눈높이 달라졌다는 점 직시해야"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이 과거로 회귀하는 인상을 줄 수 있고, 공천을 받기 어렵다 보니 공천권을 쥔 사람에게 충성하며 이재명 대표의 친정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올드보이 출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당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척도가 될 것"이라며 "국민 눈높이가 전보다 더 높아졌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올드보이의 출마를 과거 민주국민당 사례에 빗대며 "이번 총선에서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민주국민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중진들이 만든 정당이다. 창당 당시 조순·이수성 전 총리 등 거물급 올드보이들을 내세웠지만 총선에서 대패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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