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의 나라 獨서도 시에스타 도입 추진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2023. 7. 31.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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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리의 구텐 탁 독일]
지난 21일(현지 시각) 가뭄으로 갈라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호켄하임의 밀밭 모습./EPA 연합뉴스

엄격한 노동 윤리를 고수해온 독일에서 스페인과 남유럽 일부 국가의 전통 문화인 시에스타(Siesta)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정부와 의료계는 도입에 긍정적이지만, 근로시간 연장을 우려하는 국민들은 다소 부정적이다.

시에스타는 업무 효율을 위해 점심 이후 1~3시간가량 낮잠 휴식을 갖고 아침이나 저녁에 더 일하는 제도다. 이 시간엔 상점과 관공서도 쉰다. 과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도입 국가들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게으름의 상징’으로 치부됐고 일부는 폐지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과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최근 시에스타의 효능을 주목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유럽의 폭염 발생 지역이 점차 북쪽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독일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4500명에 달했고, 올여름도 섭씨 30도 중반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 연방공중보건의협회장인 요하네스 니센은 최근 독일 매체 RND 인터뷰에서 “뜨거운 열기에 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남부 국가의 업무 관행처럼 여름철에는 일찍 일어나 아침에 생산적으로 일하고 정오에 낮잠을 자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카를 라우터바흐 보건장관은 “더위 속 낮잠이 나쁜 제안은 아니다”라며 “다만 고용주와 직원이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독일 경영자총연합회(BDA)는 “(그만큼 일을 보충하는) 유연 근로만 가능하다면, 낮에 더 길게 쉴 수 있다”고 했다. 독일 노동총연맹(DGB) 이사 안야 피엘도 “무더위에 일하면 근로자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섭씨 35도가 넘으면 사무실을 폐쇄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노사정(勞使政)이 원칙적 찬성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국민 여론과 중소기업 등은 부정적이다. 소규모 업체는 하루 1~2시간 근무 공백도 감당하기 힘든 데다, 근로자는 그만큼 출근을 앞당기거나 퇴근 시간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여론조사 업체 오피너리는 지난 19일 7466명 설문 조사에서 79%가 시에스타 도입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베를린의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마리아(32)씨는 “이미 출퇴근에 2시간을 쓰고 있고 중간에 1~2시간 갖고는 집에 다녀올 수도 없다”며 “퇴근이 늦어지는 걸 원치 않고 저녁 시간은 가족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중소 규모 업체들의 독일 가족기업협회와 독일 니더작센주 기업협회(UVN)는 “이미 산업 규정상 기온이 높을 때 고용주는 안전한 작업 환경을 갖춰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 아이디어(시에스타)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시에스타를 도입할 경우 어떤 업종을 대상으로 할지, 한 기업 안에서도 직무별로 달리 적용할지도 논란이다. 야외에서 하는 육체노동이 아니라면 사무실마다 에어컨이 보편화돼 있는 상황에서 자칫 자영업 위축 등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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