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선거법 합의 무산… 내일부터 현수막·유인물 ‘무법천지’

박상기 기자 2023. 7. 31. 04: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17일 법사위 회의에서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정점식(오른쪽)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선거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 개정에 1년이라는 시간을 줬지만, 여야는 합의에 실패했다. /연합뉴스

다음 달 1일부터는 누구든지 선거 현수막이나 유인물 배포를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선거법 관련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7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시한을 정했지만, 여야의 법 개정 합의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일부터 관련 조항은 효력을 잃고 입법 공백 상태가 된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현수막과 유인물이 난립하는 ‘무법 천지 선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헌재는 작년 7월 현행 선거법이 선거일 180일 전부터 ‘현수막과 그 밖의 광고물 설치’와 ‘벽보 게시, 인쇄물 배부·게시’ 등을 금지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어떤 선거든 180일 전부터 이런 행위들을 전부 금지하는 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180일이나 되는 금지 기간을 줄여보라는 취지다.

이에 국회는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면서 180일을 120일로 줄이는 개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지난 2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여야 대립 속에 통과가 무산됐다. 개정안이 헌재가 정한 시한인 7월 31일 안에 국회를 통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8월 1일부터는 이 조항들이 효력을 잃게 된다. 금지 기간이 사라졌으니 누구나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도 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정치권 인사들은 당장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부터 “난리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당 소속 김태우 전 구청장이 물러난 탓에 치러지는 선거여서 후보를 낼지 고민 중인데, 민주당에서는 최근 1차 후보 공모에 13명이 지원했다. 민주당 법사위의 한 의원은 “당내 경선 때부터 13명 후보는 물론이고 그 지지자들까지 다 현수막 걸고 유인물도 뿌리는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안 그래도 정당 현수막을 마음대로 걸 수 있게 해서 전국이 현수막에 몸살인데, 국회가 여기 기름을 끼얹은 격”이라고 했다. 현수막과 유인물을 방치하면 공정한 선거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 많은 후보는 현수막을 수백 장 걸고, 돈 없는 후보는 몇 장 못 걸면 공정한 선거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국회는 헌재가 작년 7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1년의 시한을 줬지만, 결국 합의엔 실패했다. 국회 정개특위에 속한 한 의원은 “1년을 허송세월하고 막판 벼락치기로 땜질 입법을 시도했는데, 그마저도 못한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선거법 합의에 실패한 건 정작 현수막이나 유인물 배포 사안에서 충돌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법 개정의 또 다른 논쟁 사안인, 선거 기간 중 선거 관련 집회의 자유를 얼마만큼 허용할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헌재가 사실상 거의 모든 집회를 금지한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여야는 국회 정개특위에서 집회를 무제한 허용하는 대신 ‘30인 인원 제한’을 마련했다. 하지만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30명 인원 제한이 헌재 취지에 부합하느냐” “30명과 31명 차이가 뭐냐”는 여당 측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전체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됐다.

야당은 “여당의 발목 잡기”라고 했고, 여당은 “헌재 결정 취지를 무시한 법안 밀어붙이기”라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입법 공백 사태가 벌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여야가 정치적 이익을 따지고 계산하다가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