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싹 자른다… 바이든, 내달 돈줄 원천봉쇄 명령 서명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3. 7. 31.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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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별장이 위치한 델라웨어주 레호보스 해변 인근의 성당을 떠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대중(對中)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자국 기업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글로벌 테크 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는 미국 거대 사모펀드(PE)와 벤처캐피털(VC)을 중국과 철저하게 분리시키면서, 중국의 첨단 분야 신생 기업 성장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인터넷 기업 붐이 시작된 200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미·중의 ‘테크·자본 밀월관계’는 완전히 마침표를 찍을 전망이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행정명령은 반도체,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팅 분야의 신규 투자 건에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향후 미국 투자자들이 해당 첨단 분야 중국 기업에 투자하려면 정부에 보고해 허가받아야 한다. IT 업계 전문가들은 “투자 신청이 허가를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사실상의 투자 금지안이라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 거대 자본은 중국 테크 산업을 지탱하는 ‘큰손’ 역할을 해왔다. 이른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와 글로벌 소셜미디어 시장을 뒤흔든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까지 미국 자본을 자양분 삼아 급성장을 거듭해 왔다. 투자 업계에서는 미국의 자본 투자가 금지될 경우, 유럽·아시아 등 미국 우방국들도 대중 투자를 기피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중국은 민간 자본은 물론, 국영 자본까지 총동원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해외 자본으로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해,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테스트한 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중국 테크 기업들의 전략도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는) 중국을 더욱 봉쇄하고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철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국 첨단 산업 투자 금지 행정명령은 각종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실행될 전망이다.

첨단 산업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제한하는 구상은 바이든 정부 초기부터 나왔지만, 여태껏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다. 민간의 투자를 정부가 규제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 업계와 정치권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중 투자 규제안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지난 25일에는 밥 케이시, 존 코닌 의원의 대중 투자 금지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블룸버그는 “(대통령의 투자 제한 행정명령 역시) 수차례 미뤄졌지만, 이번에는 명령을 시행하기 위한 규칙을 제정하는 단계까지 진행됐다”고 했다. 자국 금융 기업·기관들의 손실을 감당하면서까지 중국과 완벽하게 ‘디커플링(분리)’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당초 투자 금지가 검토되던 바이오와 배터리 분야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큰손’ 잃게 된 중국 기업들

거대한 미국 자본과 높은 성장성을 지닌 중국 하이테크 기업들은 20년 넘게 공생해왔다. 중국 기술 기업들은 미국 자본을 무기 삼아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했고, 미국 투자사들은 이들 기업의 기업공개(IPO)로 막대한 투자 이익을 돌려받았다. 최근 수년간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미국 자본의 대중 투자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이유다.

중국 대표 테크 기업인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의 주요 주주명단에서는 블랙록,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 뱅가드그룹 같은 미국계 금융·투자 기관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의 주요 주주 역시 미국계 세쿼이아 캐피털 차이나와 KKR이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기업 디디추싱의 2대 주주는 미국 우버다. 전문 투자 기업뿐 아니라 성공한 미국계 테크 기업들도 중국 스타트업의 자금줄이 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하며 최근 이런 관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S&P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의 대중 투자 총액은 70억2000만 달러(약 9조원)로, 전년 대비 76% 급감했다. 미국 정부의 규제를 의식한 미국계 기업들이 인도·동남아시아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투자 건수도 같은 기간 40% 떨어졌다.

그래픽=양인성

지난 6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 VC이자, 2000년대부터 알리바바·텐센트에 시드 투자(초기 투자)를 한 중국 스타트업계 대부인 세쿼이아 캐피털이 아예 중국 법인을 분리하며 중국 투자 시장에서 철수했다. 중국 현지에서 “미국의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에 봉착해 줄도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급해진 중국, ‘친테크’ 정책으로 복귀

해외 자본에 자국 스타트업 성장을 맡기기 어려워진 중국은 국가가 나서 기술을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0일 “중국 지방정부들이 빅테크 기업들과의 관계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을 위한 레드카펫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중국 2위 게임 업체 넷이즈는 본사가 있는 항저우시와 AI 및 e스포츠 파트너십을 맺었고, 북부 주요 도시인 톈진과 남부 선전시는 현재 중국에서 생성형 AI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바이두와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 단위의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유망 기업들에 몰아 주면서 자금 수혈을 하겠다는 것이다. SCMP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작됐던 대대적 ‘빅테크 죽이기’가 마침내 끝났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당국의 이런 전략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자본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향후 반도체·인공지능·양자컴퓨터 분야에선 지원이 일부 대형 기업에만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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