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역사를 줄 세우지 말라
전대미문, 국가가 역사 관리
민족 배반자 기소권까지
죽은 자 단죄하는 후세의 칼춤은
도덕적 만용이자 지적 야만
보훈부, 국가유공자 공적 재심사
보수, 진보 막론하고
‘빨갱이 몰이’ ‘친일 몰이’ 없어야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자모시치는 폴란드 남동부의 작은 중세도시다. 폴란드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타타르인 등이 5세기 이상 어울려 살았던 아담하고 예쁜 르네상스풍 도시다.
이 도시가 낳은 20세기의 가장 역사적인 인물은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유대계 폴란드 여성 사회주의자로 여러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민주당과 러시아의 볼셰비키를 호령하며 20세기 초 유럽의 사회주의를 대변한 인물이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라는 구호 아래 레닌의 비민주적 ‘(야만적) 타타르 마르크스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로 잘 알려졌다. 덕분에 룩셈부르크는 현실사회주의의 대안인 ‘민주적 사회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서유럽 68세대의 우상이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한국에서조차 여러 종의 전기가 번역되었지만, 정작 공산주의 폴란드에서 룩셈부르크는 찬밥 신세였다. 폴란드 공산당의 주류인 반유대주의적 민족주의파는 ‘민족 허무주의’라는 비판 아래 룩셈부르크의 흔적을 지우기 바빴다.
공산주의 시절에도 박물관은커녕 그 흔한 거리 이름조차 없었다. 자모시치의 룩셈부르크 생가는 허름한 구둣방으로 남아있었다. 1980년 공산당에 반대하는 연대 노조 운동 이후에나 겨우 생가라는 표지가 생겼다.
공산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도 그는 찬밥이었다. 구둣방이 잡화점으로 바뀐 것만 빼면, 폴란드 역사에서 룩셈부르크의 기억을 지워버리겠다는 기류는 더 강해졌다. 보수 가톨릭 민족주의 세력인 집권당 ‘법과 정의당’은 2018년 3월 룩셈부르크 생가를 알리는 명판마저 떼어 갔다.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리버럴 정치가인 자모시치 시장의 반대도 소용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원래 역사 유적을 관리하는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었는데, ‘법과 정의당’ 정권은 사회주의 역사의 흔적은 중앙정부가 관리한다는 시행령을 만들어 역사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했다.
‘민족기억관리소(IPN)’라는 전대미문의 조직이 역사 통제의 주역이다. 폴란드 민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역사에 대한 기소권까지 부여받은 이 기관은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 단위마다 분소를 두고 역사를 관리한다. 수년 전에는 공공연히 나치식 경례를 일삼던 인물을 큰 도시인 브로츠와프의 기관장으로 임명해서 국제적 공분을 산 적도 있다.
한때 이 기관은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역사학도들의 모델로 여겨졌다. 이들은 실제로 노무현 정권 시절 ‘민족기억관리소’ 소장을 한국으로 초대해서 융숭히 대접한 적도 있다. 이 기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누누이 말렸지만 마이동풍이었다. 역사가들이 민족 배반자를 단죄할 수 있는 기소권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이냐는 식이었다.
권력이 역사를 통제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우리가 역사를 관리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역사를 권력에 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역사관이다.
역사교육의 민족주체성을 강조하고 국정교과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역사에 대한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는 유신 독재의 유산이다. 그러나 공무원 임용 등 국가고시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을 도입하여 역사의 국가 관리를 강화한 것은 민주화 시대에 들어선 후의 일이다.
영호남 통합을 위해 가야사 연구를 국정 과제로 설정하고 ‘토착 왜구’ 등의 과도한 언사로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자랑스럽게 표방한 문재인 정권의 에토스는 유신 독재의 사후적 정신 승리를 상징한다. 윤석열 정권의 장점은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보다는 굿을 안 하는 게 낫다.
그런데 갑자기 보훈부 장관의 입을 빌려 전임 정권에서 선정된 국가유공자 공적을 재심사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일제 당시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였던 주세죽도 재심사 대상이란다. 북에서 ‘미제 간첩’으로 몰려 죽은 박헌영의 아내였던 주세죽이 남에서도 버려질 운명이다. 역사를 권력 앞에 줄 세우려는 못된 버릇을 전임 정권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말이 없는 죽은 자를 단죄하려는 후대 역사가들의 칼춤은 도덕적 만용이자 지적 야만이다. ‘빨갱이 몰이’가 ‘친일 몰이’보다 낫다고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누구에게나 인간적 삶을 보장하려는 사회보장 체제는 룩셈부르크나 주세죽의 공이다.
민주사회의 역사관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역사’를 열린 마음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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